터면 교수는 우수한 졸업생이 그 고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기업체를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제자 휴렛과 패커드 등에게 기업을 세우도록 독려했다. 휴렛과 패커드는 1938년에 집 차고에서 최초의 음 발전기 개발에 성공했다. 휴렛패커드사로부터 시작한 기업창업은 나중에 스탠퍼드 공업단지를 설립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47년에 벨전화연구소의 쇼클리 등 세 사람이 발명한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대체하였고, 전세계의 전기제품을 소형화하였다. 1957년에는 쇼클리반도체연구소에서 독립한 8명의 기술자들이 페어차일드사를 설립해서 반도체 산업의 기초를 만들었다. 그후 1968년경에 페어차일드사에서 독립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앤드루 그로브가 인텔사를 설립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토양을 쌓았다.
1973년에는 오늘날 근거리 통신망으로 쓰이고 있는 이더넷을 제록스파크에서 로버트 멧갤프가 발명했다. 로버트는 이더넷 특허를 기초로 해서 3콤(Com)사를 설립했다. 1977년에는 스테판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퍼스널 컴퓨터를 개발했다. 트랜지스터·반도체·마이크로 프로세서·PC·VCR·컴퓨터통신망·심장이식 등 모든 정보통신·소프트웨어·바이오테크놀로지 분야의 기술을 선도한 곳이 바로 실리콘밸리였다. 결국 실리콘밸리는 휴렛과 패커드의 차고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실리콘밸리는 전세계로 퍼졌고,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은 미국이 모델이 되었다. 내가 창업을 할 무렵 한국의 실리콘밸리는 청계천 세운상가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벤처기업이라고 하기에는 단순 복제기술이 앞서 갔다.
단순 복제기술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 필수적인 과제였다. 기술개발의 필요성이 아주 절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몸담았던 동양컴퓨터산업사처럼 규모가 큰 컴퓨터 회사조차 그것을 회피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새로운 기술개발에 대한 성과는 항상 불확실하였다. 그래서 투자를 하면 반드시 이윤을 챙겨야 하는 경영원칙에서 본다면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보따리를 싸서 나왔지만,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는 수행하기 힘들었다. 그러한 것은 훗날 재벌기업의 반도체 산업에서 성과를 올리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응용분야의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이 소모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처음에 두 명의 기술자를 데리고 내가 개발한 공장 자동제어장치는 그 종류가 무수하게 많기는 하였지만, 그 기초가 되는 시스템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