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 초소를 지날 때 우리가 탄 차가 미국 대사관의 외교관 특수 차량일지라도 통과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녀가 연락을 하라고 적어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를 통해 나타샤의 목소리가 울렸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있는지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자 그녀는 초소의 경비원에게 전화를 바꿔달라고 했다. 경비원에게 전화를 바꿔주었다. 경비원은 무엇인가 한동안 대화를 하더니 수화기를 놓고 나에게 와서 경례를 붙였다. 들어가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별장이 있는 위치를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별장은 초소에서도 십여리 정도 안으로 들어갔다. 울창한 숲을 지나면 벼랑이 있는 강변이 나타났다. 강을 따라 길은 한동안 올라갔는데, 길에서 조금 떨어진 숲에 다른 별장이 보였다. 대부분 통나무로 지어놓은 별장은 숲에 파묻혀 있었다. 3-11블록에서 빨간 지붕을 찾으라고 해서 차를 천천히 달리면서 사방을 살폈다. 강이 보이는 벼랑 위에 빨간 지붕의 통나무집이 발견되었다. 통나무와 붉은 벽돌을 섞어서 지은 2층 가옥이 눈에 들어왔는데, 집채보다 더 큰 나무 아래에 나타샤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있는 차를 발견하자 여자는 두 팔을 흔들면서 신호를 보냈다.
그녀는 진청의 바지에 하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입고 있는 청바지는 미국산이었고, 스웨터 역시 외제였다. 별장의 마당 한쪽에는 여러 대의 승용차가 주차해 있었다. 그 중 미국 포드에서 만든 빨간 스포츠카도 눈에 띄었고, 독일산 벤츠도 보였다.
한쪽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나는 동행한 로버트 대위를 소개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하였고, 로버트는 서툰 러시아어로 인사를 하였다. 나타샤는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넓은 거실에는 십여명의 젊은 남녀가 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탁자에 걸터앉아 포커를 하였고, 여자들은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를 치면서 연주를 하였다.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하는 흑인 연가였다. 그것은 매우 경쾌하면서 찢어지는 듯한 록을 혼합한 독특한 음악이었다. 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악을 거의 동시에 그들이 즐기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권층 자녀들은 세계화되어 있었다.
거실에 있던 젊은이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다. 나타샤는 친구들에게 로버트와 나를 소개했다. 계집애들은 연주를 중단하였고, 사내들은 포커하던 것을 멈추었다. 나는 그들과 악수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