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물리학과 강주상 교수 jskang@hep.korea.ac.kr
과학기술이 뿌리를 이루는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지평이 활짝 열렸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산과학과 통신기술이 급속히 발전,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이 됐으며 인류역사 이래 어느때보다 빠르게 지식이 축적되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조류에 적응하고 국제경쟁력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바뀌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8.15 해방후 혼란기를 거쳐 6.25 전쟁으로 인해 우리의 과학기술은 원점부터 시작해야 했다.
실질적인 한국의 과학기술은 지난 60년대들어 경제개발 5개년 사업과 맞물려 약 40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특징은 경제성장의 도구로서 과학기술정책이 추진됐다는 점이다.
당장 시급한 경제개발에 치중하다보니 외국기술의 직접도입같은 초단기적 수단과 단기적인 국내기술 개발에 많은 자원이 집중됐고 중장기적 발전에 필요한 공학이나 기초과학분야는 자연히 등한시됐다.
IMF 국가경제위기 원인을 여러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으나 과학기술자들은 그동안 근시적인 과학기술정책을 들고 있다. 이는 노벨상이 기초과학분야에만 시상되는 점을 감안할 때 그동안 많은 과학기술투자에도 불구하고 왜 수상자 한명 배출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된다.
지난 40년간 우리사회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경제규모의 성장은 물론 민주화·지방자치 등 커다란 사회개혁이 이뤄졌고 개혁운동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이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과학기술은 외형증대에 치우치고 기본정책의 틀은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정부투자만 늘리면 과학기술은 자연히 발달하리라는 사고방식으로 지난 90년대에는 특히 과학기술 투자규모가 증대했으나 이를 뒷받침할 과학기술정책의 개혁이 미흡해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는 오히려 70∼80년대의 행정부가 더욱 돋보인다는 풍조가 만연하다.
21세기 지구촌사회에서 지속적 성장을 유지하려면 단순한 투자증대에 앞서 과학기술정책의 커다란 전환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그 바탕이 될 과학기술 기본법의 제정이 시급하다. 현재 30년이 지난 과학기술진흥법과 2년후 시효가 만료되는 한시법인 과학기술혁신특별법 두가지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미래지향적인 기본법으로 대체해 새천년대 과학기술 발전을 기획해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정책도 종래의 경제성장 위주의 단편적 성향에서 벗어나 중장기 기술혁신에 기여가 가능하도록 기초과학·공학의 균형발전과 복지기술·환경기술 등 공공성이 강한 기술개발로 국민의 삶이 향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관행이 되다시피 한 외국자본과 기술에 의존하는 체제에서 우리 과학자들에게 뿌리를 두고 국가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튼튼한 과학기술체계가 확립되도록 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자들에 대한 정부의 올바른 인식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진행중인 사회의 각종 구조조정과 맞물려 과학기술자들을 소모성 노동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커다란 정책적 착오다.
과학기술자들은 다른 이익집단과 달리 자신의 권익을 크게 외치지도 않고 자신의 업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 성향이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이 연구소의 거대한 시설이나 도서관의 방대한 장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의 두뇌와 기술자의 손끝에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이들을 계속 활용가능한 자원으로 아끼는 정책이 아쉽다.
현재 만연한 과학기술자들의 침체분위기는 청소년들의 과학기피현상으로 이어져 국가발전에 큰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과학은 임진왜란때 거의 파산했고 그 이후에도 파상적 시도가 있었을 뿐이다. 다행히 과거 40여년간 지속적으로 발전해 이만큼 토대를 이뤘는데, 무슨 연유이건 그 활력소가 사라지면 원점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