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앨범 이대로 좋은가>창작 의용 위축...시장 왜곡 부채질

 ‘여대생 김모양. 특정 아티스트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음악마니아는 아니다. 하지만 레코드가게 앞을 지나거나 용돈이 두둑할 때면 음반 한 두 장 정도 사는 것이 취미다. 특히 그녀가 즐겨 찾는 것은 편집앨범.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싼 가격에 여러 뮤지션의 곡을 한 번에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앨범의 경우 CD 2∼3장을 한 장 가격에 살 수 있으니 경제적으로 이만저만한 효과가 아니다. 물론 이전에 가지고 있던 앨범과 중복되는 것도 있고 신선함은 떨어지지만 시중에 편집앨범이 워낙 많이 나와 있는 데다 가격도 저렴해 편집앨범으로 손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편집음반은 말그대로 이전에 발표된 곡을 모아 재편집해 놓은 앨범을 일컫는다. 음반제작자들은 MP3 다운로드 관행이 음반시장을 불황으로 몰아넣은 원인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실은 편집음반의 남발이야말로 음반시장을 구조적으로 병들게 한 주범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편집음반은 신보제작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편한 길’을 택하려는 음반사의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됐다. 대중에게 친숙해진 곡을 위주로 하되 유명 연예인을 ‘얼굴마담’으로 앞세우면 금상첨화. 대박은 아니지만 일정 판매량은 보장받을 수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음반사들이 대중심리를 악용해 편집음반을 우후죽순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음반사에 몸담고 있는 관계자들조차 “말이 좋아 편집음반이지 실제로는 덤핑음반”이라며 자조섞인 목소리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편집음반은 신보 음반 판매를 위축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함으로써 작가의 활동폭과 창작의욕을 저하시켜 음반시장 전체를 침체의 늪으로 몰고 간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보통 편집음반은 소속 기획사 이전에 따른 보복성의 일환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가수가 새 음반을 낼 시기에 맞춰 판권을 갖고 있는 예전 기획사에서 몇 곡만 묶어 ‘베스트앨범’을 내놓을 경우 새 음반을 내는 가수에게는 치명적이다. 속사정을 모르는 대중은 베스트앨범을 가수가 낸 줄 알기 때문에 가수 이미지는 물론 음반 판매량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장의 선순환 역할을 해야 할 신보 음반의 제작·판매 위축이 결과적으로 작가의 창작의욕을 떨어뜨리고 대중음악 시장을 피폐하게 하는 동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99년 이후 발매된 편집앨범은 총 200여종이 넘는다. 하지만 올 중순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로 음반홍보의 길이 사실상 막히면서 음반사마다 편집앨범 제작에 열을 올린 것을 감안하면 편집앨범 숫자는 이를 훨씬 상회할 전망이다.

 특히 타이틀곡 ‘사랑할수록’으로 유명한 편집앨범 ‘연가’는 200만장을 넘은 밀리언셀러로 가요시장을 강타했고 ‘애수’ ‘동감’ ‘열정’과 같은 편집앨범이 대표적인 음반으로 꼽히는 등 편집앨범이 국내 음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상당하다. 피폐해진 국내 음반시장의 현주소를 방증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 최근에 음반사의 이같은 무분별한 편집앨범 제작에 제동을 걸 만한 반가운 소식이 나왔다. 작사·작곡가 등 원저작자에게 직접 허락을 받지 않고서는 편집음반을 제작할 수 없다는 판결(저작권침해정지 등 청구소송 상고심)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집앨범으로 멍든 음반시장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음악저작권 관련 신탁관리단체인 한국음악저작권협회(KOMCA)와 음반사간에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는 가능한 한 모든 조치를 통해 그간 받지 못했던 저작료를 징수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편집음반 침해구제 특별전담팀’을 구성, 전면적인 침해조사에 나서는 한편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징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음반사는 저작권료를 일시에 납부하는 것은 업계를 고사시키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음반사마다 대략 10억∼15억원 가량 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업체마다 이만한 지불능력이 없기 때문. 극단적으로는 지금까지 작가들에게 정액제로 지불했던 ‘곡비’를 환불받아 저작권료로 내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을 정도다.

 창작에 대가가 지불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크게 보면 작가의 터전인 음반시장이 있어야 작가도 활동할 수 있다. 적정선에서 상호 타협점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편집음반 근절을 통해 건전한 음반시장 육성이라는 당초의 목적이 빛을 바래지 않을 것이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