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반 이후 최근까지 온라인게임업계 핫이슈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심의’다. 게임업계와 영등위 사이에 등급심의를 두고 ‘기준이 있다, …없다’는 공방이 계속되면서 영등위의 등급심사는 마치 게임의 최종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로까지 여겨지는 분위기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게임업계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등급심의 문제에 너무 많은 공력(功力)을 쏟았다. ‘리니지2’가 발단이 된 심의기준 문제가 업계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면서 업계와 영등위 양자간 갈등의 골은 깊어질 만큼 깊어졌다. 급변하는 시장환경 속에서 경쟁력있는 게임개발을 우선해야 할 게임업체들이 소모적인 논쟁으로 진력을 소모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일부 게임업체 사장들은 “국내 등급심의는 개의치 않고 해외시장만 주력하겠다”는 자조섞인 영업전략을 밝히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해 12월 17일, 문화관광부가 문화산업 강국의 청사진을 발표하는 청와대 보고회에서까지 이 문제가 거론됐다. 게임·영상물에 대한 심의규제가 산업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서로의 역할이 있으니 전문가를 통해 면밀히 검토한 후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논리로 따지자면 영등위의 건전사회 문화 조성, 업계의 게임산업 육성 등 양자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다. 문제는 양자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는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갈등은 어떤 조직, 사회에서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해결하고자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방법 또한 민주적인 대화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서로 대화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제를 극단적으로 보자면 청소년보호와 산업육성의 우선순위다. 지난해 9월 미국 게임관련 협회는 ‘리니지2’를 ‘13세 이용가’로 규정했다. 반면 영등위는 10월 같은 게임을 ‘15세 이용가’에서 ‘18세 이용가’로 등급을 강화했다. 이같은 판결은 개방적인 미국사회와 유교적 색채가 잔존하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차이로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 보호제도 측면에서 보면 미국은 한국보다 한수 위다. 문화적 차이로 내린 게임등급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결정이 산업적인 면에서 ‘자승자박’이 되어 돌아 온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하다.
게임 수출국에서 청소년에게 해롭다고 판명한 상품을 수입해 자국 청소년에게 개방할 어리석은 정부는 없다. 특히 중국이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한 견제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시비의 단초를 제공하는 명분이 될 수 있다. 콘텐츠 수출상품으로 온라인게임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등위의 등급심의는 분명 ‘찬물’인 셈이다.
최성 남서울대 교수는 “청소년에 대한 각각의 수준과 성향 등은 부모, 교사 등 주위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며 “소수의 위원들이 한정된 잣대로 온라인게임을 등급심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산업발전에도 큰 장애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게임을 산업으로 바라볼 때 궁극적으로 업계 스스로 시장을 키우고 지킨다는 측면에서 자율심의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게임산업은 제조업과 다르다.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생명이다. 원칙은 있지만 게임산업의 발전과 시장동향을 곁들여 생각할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
<이경우기자 kw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