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이 이라크에서 전해온 김선일씨의 참수소식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을 무참하게 처형하는 모습은 설사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 해도 이해될 수 없다. 이는 우리나라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몰고온 6·25와 함께 6월이 ‘잔인한 달’로 기억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그 6월의 마지막 즈음에 또 하나 생각해보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사건은 사건을 잠재운다. 사소한 일상은 큰 사건에 묻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 버린다. 사회가 이라크의 참수 비보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조용한 일상 역시 소리 없는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6월은 정보문화의 달이다. 누구도 소리쳐 외치지 않았지만 한 쪽의 사람들에게는 몹시 중요한 달이다. 정보소외 계층을 보듬어 안고 다 같이 밝은 정보사회를 열어가자는 뜻깊는 달이다.
눈을 돌려 가까이 보자. 우리 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장애인, 정보소외계층은 우리 사회가 자행하는 또 다른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애인과 정보소외계층을 보듬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말뿐인 경우가 허다하다. 선언적 의미일 뿐 실행에 있어서 아직도 갈 길은 멀다. IT강국을 향해 전력 질주하면서 남긴 문제 중의 하나는 함께 잡은 손을 놓쳐버린 것이다. 흡사 70년대 고도 경제성장에만 집중해 인권과 노동권이 유린된 것과 같다.
정보문화의 달이면 의례적인 요식과 잠시의 관심, 그 이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현상이 지속된다. 진보 없는 ‘다람쥐 쳇바퀴’다. 그나마 장애인의 경우는 낫다. 장애인 관련 각종 사회단체들이 상대적으로 많고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령자나 저소득층의 정보소외는 정보문화의 달인 6월에도 관심 밖이다. 행사장은 관련 인사들만 자리를 채우고 정작 인식을 확산시켜야 할 일반시민은 무슨 행사인지도 잘 모른다.
정보소외는 빈익빈의 악순환을 낳는다. 정보가 곧 돈인 정보사회에서 정보소외는 ‘경제 테러’와 다르지 않다. 빈곤퇴치를 주장하면서 정작 빈곤퇴치의 가장 전면에 선 정보화에 무관심하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라크 참사가 이라크인들의 한국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다면 정보소외계층의 반감 역시 어떤 식의 행위로 표출될지 모를 일이다. 정보문화의 달에 이라크 참사가 주는 교훈이다.
디지털문화부=이경우기자@전자신문, kw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