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情꾸러미` 추석 선물

진심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극심한 내수 불황에 허덕이던 백화점 등 쇼핑업체들은 추석 대목 잡기에 여념이 없다.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지만 여기저기서 선물 상자들이 조금씩 오가기는 하는 모양이다. 가뜩이나 밀리는 퇴근길이 요 며칠 더욱 혼잡한 것도 백화점이나 쇼핑센터의 선물 꾸러미 배달이 겹친 때문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명절 때 선물하는 것은 정(情)과 마음을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 기인한 것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자식 공부를 가르치는 서당 훈장에게 달걀 꾸러미를 갖다주고 명절 때면 음식을 나눠 먹었다. 가까운 사람이나 고마운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은 흐뭇한 우리의 명절 풍습이다. 한때는 나일론 양말이 신기한 선물이었고 양담배·양주가 귀한 선물의 표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추석 명절 선물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다. 산업화와 함께 마음도 오염되고 순수함도 바래갔다. 명절 선물이 이해타산의 속셈이 담긴 어떤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마음을 드린다’는 말은 있지만 진정한 고마움은 어디로 가고 선물 안에는 철저한 이해관계의 논리만 남게 됐다. 선물은 어디까지나 선물로 그쳐야 한다. 이해관계가 결부되다보니 지나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뇌물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그러다간 어김없이 뒤탈을 불러오게 마련이다.

 작년 이맘때 정계를 중심으로 추석선물 얘기가 나오면서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에는 ‘부정부패를 뿌리뽑자’는 바람이 일면서 선물 안받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관가는 정부 합동 암행감찰에 몸 사리기에 나서면서 썰렁하다. 재계라고 다른 것은 아니다. IT업계에도 추석 선물 및 떡값 안 주고 안 받기 움직임이 일고 있다. LG전자, KT, KTF, 데이콤이 대표적이다. 최고경영자(CEO)들이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내용의 서한을 내부 직원과 거래처에 보내는 것은 기본이다. 윤리강령을 선포하거나 신고센터까지 운영하며 아예 암행감찰까지 벌이는 업체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적게는 몇 개 계열사와 수백 개 하청기업을 거느리며 수·발주를 하느라 명절 때만 되면 인사치레가 오가는 등 부작용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중견기업도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경기사정이 나빠 챙겨줄 여력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이 기회에 종전 ‘갑과 을 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해 공정한 거래관행을 정착시키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듯하다. 최근 기업의 모토가 ‘가치경영’에서 ‘윤리경영’으로 바뀔 정도로 윤리경영이 기업 생존의 필수 조건인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한 움직임이기는 하다.

 하지만 명절 때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양식에 맡겨야 할 미풍양속의 문제다. 무조건 배척할 것은 아니다. 뇌물을 하자고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물론 뇌물과 선물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선물을 받아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추석을 앞두고 IT업계에 선물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정과 합리적 윤리를 찾겠다는 사이의 딜레마로 여겨진다.

 엊그제 SK텔레콤이 오는 10월부터 협력사들에 납품 즉시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나로텔레콤, LG텔레콤 등 다른 통신사업자들도 중소협력사들의 결제대금을 추석 전에 조기 집행하기로 했다. 내수 부진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추석 선물은 없을 듯하다. 깨끗한 명절문화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통신사업자들이 이러한 선물이 기업이미지 홍보를 위한 대외용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형식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이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중소기업과 건강한 협력관계를 맺을 때 가능하다. 진심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다.

◆윤원창 수석논설위원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