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기업]디지털 韓流, 우리가 이끈다

지난해 10월 멕시코의 한 대형 전시장. 3000여 명의 현지 젊은이들이 이름도 생소한 우리나라 그룹의 공연에 열광하는 진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룹명은 ‘반야’. 안다미로(대표 김용환)가 개발한 국산 댄스 시뮬레이션 게임기 ‘펌프(Pump it up)’에 수록된 음악을 전담하는 팀이다. 최근 수년간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에서 ‘펌프’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급기야 2주 동안 ‘반야’의 순회 콘서트까지 열린 것이다.

 90년대 말 국내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펌프’는 해외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2000년 안다미로 미국지사가 설립된 것을 계기로 미국은 물론 멕시코·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와 스페인·영국 등 유럽, 말레이시아·대만 등 동남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에 진출했다. 가히 ‘디지털 한류(韓流)’의 첨병이라 할 만 하다.

특히, 멕시코에는 1만여 대의 ‘펌프’ 기계가 보급됐고 ‘펌프’ 마니아도 30여 만 명에 달한다. 멕시코 체육부가 ‘펌프’를 e스포츠로 인정해 대회를 후원하고 관련 협회 설립도 추진중이라고 하니 인기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와 우리나라는 ‘정열적’이라는 확실한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펌프’ 사업을 이끌고 있는 박중건 부서장은 ‘펌프’의 인기 비결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성과 ‘펌프’가 찰떡궁합이라는 말이다. 성향이 비슷한 여타 중남미 지역으로의 확장이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랩과 노래가 섞여 마치 짬뽕과도 같은 우리 가요도 멕시코에서 먹혀들었습니다. 음악이 장르별로 명확히 나뉘는 멕시코에서 우리 가요는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죠.” 그룹 ‘반야’의 리더인 이얍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이씨는 “현지화를 위해 ‘펌프’에 라틴 음악을 추가해봤지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며 “듀스 같은 대중적인 가수 외에 노바소닉이나 크래시 등 헤비메탈 그룹까지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펌프’는 우리 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멕시코 젊은이들의 ‘펌프’에 대한 열정은 곧 ‘한국 가요 사랑’으로 이어졌고 한국말과 한국 음식, 나아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지 ‘펌프’ 마니아들을 만나보면 한국에 대한 그들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현재 날씨까지 궁금해 한다니까요.” 스텝 팀장을 맡고 있는 송명석씨의 말이다. 현지의 ‘펌프’ 커뮤니티 회원들은 인터넷 메신저로 대화를 나눌 때 ‘형’이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쓴다고 한다.

 송씨 역시 ‘펌프’ 성공에 없어서는 안 될 숨은 공로자다. 스텝 팀장. ‘펌프’ 게임에서 그때그때 밟아야 하는 스텝을 정한다. 신나면서 보기에도 좋은 조합을 만들기 위해 송씨의 몸과 머리는 쉴새없이 움직인다. “항상 새로운 동작을 이끌어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제 스텝을 응용해 멋진 동작을 만들어내면 기분이 좋습니다.”

‘펌프’ 사업부서장인 박중건씨와 ‘반야’ 리더인 이얍씨, 스탭 팀장인 송명석씨. 이들의 공통점은 ‘좋아서 한다’는 것이다. 박씨와 이씨는 음악활동 경험이 있고 송씨는 ‘펌프’ 마니아 출신이다. 이처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펌프’는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국내에서 다시 한 번 ‘펌프’ 붐을 일으키는 것. 올 해 말 열릴 예정인 ‘펌프’ 세계 대회에는 해외 각국에서 예선을 거친 20명의 해외 ‘펌프’ 마니아들이 참여해 국내 실력자들과 자웅을 겨룰 예정이다.

박중건 ‘펌프’ 사업부서장은 “해외 마니아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며 “국내에서 열리는 세계 대회에서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도록 국내 ‘펌프’ 마니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정진영기자@전자신문, jych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