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이철상 브이케이 사장(3)

(3) 中본토 본격 공략

 

처음 단말기 사업에 진출하면서 브이케이는 홍콩시장에 GSM 휴대폰을 출시했다. 홍콩은 품질 관리가 용이하고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홍콩은 전지를 수출하면서 알게 된 믿을만한 큰 기업들이 있었다. 이들 기업들은 브이케이의 휴대폰 사업진출 소식에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주문을 했다. 덕분에 초기 시장 진입은 매우 순조로웠다.

첫 제품인 ‘VG100’ 모델의 판매 가격은 8800 홍콩달러(한화 120만원)였다. 노키아, 삼성전자와 같은 메이저급 업체들보다 비싼 가격에 판 셈이었다. 그 당시 중화권에 인기 있었던 송혜교를 광고모델로 기용했으며, 최고로 고급스럽다는 의미의 탑럭스(TOPLUX)라는 브랜드를 브이케이와 더불어 사용했다.

문제는 중국 본토였다. 중국 내에선 브이케이나 탑럭스라는 고유 브랜드를 붙여서 팔 수가 없었다. 중앙 정부내의 국가계획위원회가 철저한 국가 허가제도(입망)를 시행, 소수의 업체에게만 고유 브랜드 사용권한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TV, DVD시장이 자국 내에서의 출혈 경쟁으로 인해 부실화되었던 사례를 들어 10여 개 업체로 휴대폰 생산 및 판매를 엄격히 제한했다.

휴대폰 사업은 결국 최종소비자들을 상대로 한 브랜드 싸움이라고 정의했던 우리의 전략은 애초부터 넘을 수 없는 제도적 장벽에 부닥친 것이었다. 추가로 허가를 받은 기업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어서 새로 외국회사가 브랜드 신청을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중국 본토에서는 입망증을 보유한 중국 회사의 브랜드를 빌려서 판매할 수밖에 없었으며, 브이케이의 첫 번째 GSM폰은 중국 내에서 지금도 사우텍(soutec)이라는 중국 로컬 업체의 ‘V70’이라는 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대당 100위엔 정도의 비용을 중간 수수료로 부담해야 하는 것은 감내할 수 있었으나, 우리 이름이 아닌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아서는 중장기적으로 비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베이징 공항에 따라 나온 현지인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남방계 한족인 황 선생이라는 이 사람은 자기가 살던 고향에 국가의 휴대폰 생산허가를 받아 운영되던 차브리지(중교)라는 회사가 있는데 탈세 및 부실로 망했다는 것이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어쩌면 다시는 오지 못할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고, 결국 휴대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자체 브랜드를 키워가는 것이 핵심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나는 바로 그 망한 허가업체가 있는 샤먼이라는 도시로 가기로 했다.

협상을 하러 간 나를 맞이한 사람들은 모두 결정권이 없는 주변인들이었고 경영진은 이미 탈세혐의로 감옥을 갔거나 해외로 도피한 상태였다.

도대체 누구를 상대로 어떻게 협상을 해나가야 할지 난감했다. 차브리지의 구 경영진들은 간접적으로 회사의 재산을 이리저리 빼돌리느라고 바빴고 아래에 있는 직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시 차브리지는 3000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리고 있었다. 물론 공상국에 등록해 근로소득세를 내는 직원은 4명으로 되어있었지만 실제 직원은 3000명에 달했다. 그들 모두 월급을 다 받지 못하였다고 아우성이었고, 여기저기서 자재비를 받지 못했다는 채권자들은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솔직히 늪 속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난감한 가운데 어찌되었든 중국은 은행도 세무서도 모두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다는 것에 주목해서 샤먼시 정부와 이야기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짜고짜 샤먼시 세무국장을 찾아갔다. 내가 이 회사를 다시 살려낼 터이니 제발 장부를 돌려달라. 당시 차브리지의 모든 서류는 세무국이 압수해간 상태였다. 세무국장은 반갑게 맞이해주면서 내야 할 세금이 1억5000만 인민폐(한화 기준 약 220억원)인데 향후 협의를 통해 재조정해줄 수 있다는 언질을 주었다.

아직 주식인수 계약을 한 것도 아니었고 아무런 자격이 없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던 회사에 누군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에 세무국을 비롯해서 여기저기 관련된 곳에서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얼마나 많은 우발채무가 있는지 또 남아있는 자산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홍콩에 도망가 있던 구 주주를 만나 주식을 인수했다.

처음 차브리지 건물 5층의 사장실에 자리를 잡은 나는 곧 밀려드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7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채권단이나 세무국하고는 시간을 끌면서 추가 조정을 계속해나갔다. 6건 정도의 재판을 진행하여 일부 승소하면서 채무를 재조정하고 하나하나 회사를 정상화 시켜 나갔다. 6개월 이상 고생을 한 후에 차브리지는 어느 정도 회사의 모양을 갖추게 됐다.

돌이켜보면 그때 브이케이가 차브리지를 과감하게 인수하고 정부허가를 획득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마련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차브리지 인수는 두고두고 브이케이가 중견 휴대폰 업체로 성장하는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고생한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vkceo@vkcorp.co.kr

사진: 브이케이는 지난 2002년 중국 차브리지를 인수하면서 중국내 라이센스를 확보, 성공적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했다. 최근 VK텔레콤으로 사명을 바꾼 예전 차브리지 회사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