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AIST 설립
1970년 4월 초에 열린 경제동향보고회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주재로 당시 경제기획원 회의실(현재 문화관광부 청사)에서 열렸다. 김학렬 경제부총리 및 주요 정부 각료와 공화당 지도부, 청와대 보좌진이 참석했던 이 회의는 매월 열렸는데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당정협의회의 성격을 지녔다.
미국 뉴욕 공과대학교의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던 내가 그 자리에 초청되어 참석했던 것은 한국과학원(현 KAIST) 설립계획서를 1969년에 작성해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 계획서는 당초에 ‘이공계 특수 대학원 설립 사업계획서’라는 제목으로 영문 50쪽에 달했다. 이는 내가 작성해 김동조 주미 대사와 존 한나 신임 미국 국제협력처(USAID) 처장에게 제출했던 것이다.
미시간 주립대학교 총장을 30여년 역임했고 나에게 특별장학금을 주며 깊은 관심을 아끼지 않았던 한나 처장은 당시에 미국의 대외협력정책을 바꾸고 싶어했는데 이 사업제안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한나 처장의 적극적 추천과 함께 사업계획서를 받은 휴스턴 당시 USOM 한국 책임자는 포항제철 기공식에 참석하러 가는 기차 속에서 동행한 김학렬 부총리에게 이 계획서를 전했고, 김 부총리는 이를 대통령께 보고해 재가를 받은 뒤 과학기술처로 하여금 경제동향보고회에서 보고토록 지시했던 것이다.
그후 과학기술처의 초청으로 1970년 3월 24일 급히 귀국한 나는 과기처 직원들과 함께 영문 사업계획서를 번역하고 브리핑 자료를 준비했다. 이응선 국장(후에 과기처 차관 및 국회의원 역임), 권원기 심의관(후에 과기처 차관 역임), 조경목 과장(후에 과기처 차관 및 국회의원 역임), 김형기 연구조정관(후에 문교부 차관 역임) 등 당시 과학기술처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노고를 잊을 수 없다.
경제동향보고회의가 끝나자 옆방으로 옮긴 주요 참석자는 대통령과 함께 국수로 점심을 들고서 보고된 설립안을 토의했다. 김 부총리의 배려로 박 대통령 옆에 앉게 된 나는 바로 그 시점이 역사적인 결정의 순간임을 깨달았다.
박 대통령이 좌중의 의견을 묻자 홍종철 문교부 장관이 일어서서 설립반대 의견을 강력히 개진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 데모가 극심한데 많은 기존 국립 대학교수들이 반대하는 이 새로운 국립 이공계 특수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었다. 이 설립안을 추진하고 싶어하던 박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한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대통령은 남덕우 재무장관을 향해 “이 중에 대학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남 장관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남 장관은 또렷또렷한 목소리로 “우리나라의 산업이 계획대로 발전하자면 기존의 대학들을 개선하여 필요한 과학기술자를 배출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으니 이 사업을 경제특별사업으로 추진함이 옳다”는 뜻을 피력했다. 즉 교육예산이 아니라 경제개발특별예산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문교부의 반대를 우회 돌파하면서 특별경제사업으로 추진해 한국의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자는 이 주장에 대해 좌중은 모두 수긍했다.
남 장관의 의견을 듣고 박 대통령은 “산업개발에 필요한 과학기술자를 양성하는 것이 꼭 필요하니 이 사업을 추진하고 문교부는 어렵다고 하니 과학기술처가 맡아서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김기형 과학기술처 장관은 힘차게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고 KAIST는 바로 그 순간에 잉태되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결론을 내리고는 내게 과학원의 교과과정을 설명하라고 하고는 “모든 학생에게 컴퓨터 교육을 하게 되느냐”고 관심을 보였다. 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면서 미세한 내용까지 생각하는 깊은 사려에 참석했던 정치인이나 관료 모두 새로운 차원의 리더십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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