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부와 통신사업자, 제조업체 및 연구소가 혼연일체가 돼 지난 30여년 간 노력해 온 결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 말까지도 전화보급률이 100인당 수 회선에 불과했는데, 이후 30년도 채 안돼 가족 중 2∼3명이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집집마다 유선전화는 물론 초고속인터넷을 즐길 수 있으며, 동네마다 PC방이 있어 어디에서나 정보통신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1년 간 순이익이 10조원을 넘는 세계 최고 수준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유수한 정보통신 제조업체가 있고, TDX와 CDMA에 이어 차세대 핵심기술로 꼽히는 휴대인터넷 기술의 시연을 세계 최초로 성공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있으며, 국민이 다양한 정보통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 KT, SK텔레콤 등과 같은 통신사업자가 있다. 한 마디로 IT강국으로 도약할 기반이 모두 갖춰져 있는 셈이다.
이제 세계는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이로 인한 매체 간 융합현상이 활발히 이뤄져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도 통신이 가능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기존의 유선과 무선, 음성과 데이터 간의 융합은 물론 통신과 방송의 융합추세는 기술개발에 따른 DMB, 휴대인터넷 등과 같은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과 함께 서비스 간 결합을 통한 컨버전스 서비스의 제공을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새로운 산업의 등장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규제는 기술혁신을 저해하고 신기술이나 신규 서비스의 도입을 지연시키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미국, 영국 등 많은 국가가 정보통신 서비스 분야에 대해 종래의 사전규제 형태에서 사후규제 형태로, 심지어는 자율규제 형태로 점차 규제를 완화해 나가는 추세다.
새로운 서비스는 기술발전과 소비자 요구를 바탕으로 사업자에 의해 창출돼 시장에 제공된다.
그러나 새로운 서비스가 원활히 도입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서비스를 활용하고 확대할 수 있는 환경조성, 그 중에서도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컨버전스 서비스의 경우 그 특성상 관련 네트워크를 보유한 지배적 사업자가 신규 서비스를 창출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이 때문에 정부에서는 사업자 간의 공정경쟁 환경조성을 이유로 지배적 사업자의 신규 서비스 창출 노력을 저해하는 규제 정책을 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와 고려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초의 컨버전스 서비스로 상용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KT 듀(DU)서비스의 경우 유선과 무선통신 서비스를 하나의 단말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용자의 편익증진에 크게 기여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서비스는 공정경쟁 차원에서 컨버전스에 따른 요금할인이 금지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단말기 보조금 지급 금지와 영업 인력의 활용제한 등 마케팅 활동에도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그 결과 이러한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는 현재 극히 미미한 실정이며, 요금 할인이나 판촉활동의 제한으로 잠재 고객집단에 핵심 편익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서비스가 개화하기도 전에 사장될 위험에 처해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였을지는 모르겠으나, 국민 입장에서는 새로운 편익을 제공하는 신규 서비스를 인지하기도 전에 사장될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는 과연 누구를 위한 공정경쟁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자칫 사업자 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민의 서비스 이용 기회조차 희생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사항은 기술 발전에 따라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국민의 편익증진에 기여한다고 생각되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정책 결정시 공정 경쟁 환경조성보다는 시장창출 및 산업육성이라는 잣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점이다. 즉 시장이 어느 정도 임계치에 도달할 때까지는 기업의 창의적 상품화 과정을 거쳐 새로운 서비스가 자유롭게 제공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술발전에 따른 이익을 국민이 마음껏 누려보게 하기 위해 ‘선 시장조성, 후 공정경쟁 환경조성’이라는 정부 정책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정동헌 ETRI 정보화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dhjeong@etri.re.krdlr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