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감사원의 대학재정 지원사업 집행실태에 관한 감사결과 일부 대학교수가 연구비를 부당하게 집행한 사례들이 드러나 연구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실망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당사자들이야 나름대로 정당한 주관적 이유를 갖고 있을지 모르나 객관적으로는 일언반구의 변명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이러한 연구비 유용사례가 처음이 아니거니와, 작년 초에는 우리 과학자가 외국논문을 표절해 저명잡지에 여러 차례 게재한 것이 밝혀져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일도 있다. 이러한 일들은 연구윤리(Research Integrity)가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과학기술계와 연구자들이 스스로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각별히 노력하는 좋은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21세기 지식기반의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 경제구조에서는 과학기술의 중요도가 거의 절대적으로 높다. 그것이 정부와 정치권이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을 최우선의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어려운 재정여건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 예산을 해마다 대폭 늘리고 있는 이유이다. 과학기술 중심사회란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혁신에 의해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며 정치를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과학적 합리성이 지배하는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과학기술자의 역할과 사회적인 리더십이 강하게 요구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지만 강력한 리더십은 ‘윤리성’이 뒷받침될 때에만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근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명예롭지 못하게 자리를 물러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앞으로 지도층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능력 못지않게 윤리성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래 사회의 리더로서 중심 역할을 담당할 과학기술자, 연구자들에게는 누구보다도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된다. 작년 연말에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500만 과학기술자들의 자발적인 뜻을 모아 ‘과학기술인 헌장’을 공표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다. 그 속에 포함된 과학기술자의 다짐항목은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윤리의식을 갖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다짐을 단지 선언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행동규범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연구윤리지침’을 제정하고, 연구사업 관리와 연계해 일정한 실행력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이나 다른 연구결과의 표절 금지, 연구에 기여하지도 않은 사람을 논문의 공동저자로 표시하는 관행 타파, 인체·동물 실험에 관한 소위 생명윤리 준수, 실험실 안전수칙 준수, 연구비의 부당한 집행 방지 등에 대한 보다 세분된 원칙을 윤리지침에 담으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기관이나 연구자에 대해서는 연구기관 평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과제선정이나 사후평가 등에서 일정한 불이익을 줌으로써 적극적인 실행을 유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이번 감사원 감사결과와 같은 비리들은 정말 극히 일부의 연구자에게 국한된 얘기이므로, 절대 다수의 건전한 연구자까지 매도되는 일이 없도록 관계당국이나 언론이 유의해야 한다. 의미 있는 데이터 하나를 얻기 위해 숱한 밤을 새워가며 정직하게 연구에 매진해 온 연구자들, 부족한 연구비를 알토란같이 아껴가며 건실하게 집행해 온 절대 다수의 연구자는 마치 죄인 취급을 받으며 회계감사를 받는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다치고 연구의욕이 크게 저하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하물며 한두 가지의 사례로써 모든 연구자가 싸잡아서 매도된다면 그들에게서 연구의 생명인 창의성과 신바람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자칫하면 부당한 연구비 집행을 방지해 예산낭비를 줄이고자 한 효과보다 연구생산성 저하로 인한 국가적인 손해가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 홍창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cshong@n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