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산업은 어느 정도 기술 성숙을 이뤄서 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든 ‘전통산업’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력산업 분야에도 최근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바로 ‘전력IT’다.
전력IT를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간단히 정의하면 ‘기존의 아날로그 기기가 주종인 전력산업에 IT기술을 접목해 실시간 통신을 통해 운전·제어 및 감시를 가능하게 하는 지능화 기기 및 시스템과 이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서비스’를 의미한다.
과거에도 IT기술이 전력자동화시스템에 적용된 바 있다. 하지만 시스템 공급업체 간 통신 프로토콜이 표준화되지 않아 변전소 자동화 설비를 교체할 때마다 전력회사는 곤란을 겪고 있다. 서로 다른 통신기술의 적용에 따른 장비 간 호환성 결여로 높은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최근 통신 프로토콜 표준화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90년대 초부터 미국과 유럽은 변전소 자동화를 위한 표준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은 여러 제조업체의 요구에 따라 전력시스템 제어를 위한 프로토콜을 다루는 기술위원회인 ‘IEC/TC57’을 조직했다. 미국의 경우 ‘유틸리티 통신 구조(UCA:Utility Communication Architecture)’로 명명된 프로젝트를 전력연구소(EPRI)에서 수행했다.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연구가 다분히 개별적이라는 문제 인식하에 IEC는 변전소의 통신망과 시스템을 포괄하는 더욱 전면적인 표준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1995년 IEC/TC57 기술위원회 산하에 새로운 작업그룹을 조직했다.
이들은 미국과 유럽지역의 각 변전소 통신 표준이 세계 시장에서 난립하는 것을 방지하고, 호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IEC와 UCA를 통합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난 2003년 변전소자동화 통신 프로토콜 단일 표준인 ‘IEC 61850(변전소의 통신 네트워크 및 시스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UCA그룹과 IEC 간 전략적 합의에 따라 IEC에서는 표준 제정을, UCA에서는 적합성 평가 및 기술 지원, 시장 활성화 등을 담당하는 것으로 업무가 조정됐다. 이에 따라 전력업체와 제조업체들은 IEC 61850 기반의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중전기기에 IEC 61850이 적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세계기술 동향을 반영해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에서는 IEC 61850을 KS 규격으로서 도입을 추진중이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표준에 대한 인식이 미미한 실정이다. 우리가 전력IT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IEC 무대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표준을 선점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인텔리그리드(Intelligrid)·UCA·CIGRE 등과 같은 표준화 전 단계에도 국내 전문가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한다.
전력IT에 대한 국제 표준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IT 기술력을 고려할 때 국제 무대에서의 경쟁력은 충분하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유수의 기업과 연구소에서는 전력IT를 위한 다양한 규격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임을 깨닫고, 단순히 국제 규격을 따르는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국제 표준화 무대를 선점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2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고에서도 보았듯이 전력시스템 고장에 따른 피해 규모는 엄청나다. 따라서 중전기기를 현장에 적용하려면 충분한 안전성과 신뢰성 등이 보장돼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전력IT 분야는 시험기관 및 인증기관 등을 포함해 체계적이고 신속한 제품인증과 적합성 평가 시스템 등의 구축이 필요하다.
전력산업의 IT화를 위해서는 전기기술과 IT기술, 신뢰성 공학 등 종합적인 기술의 융합을 요한다. 특히 IT기술 특성상 각 기기와 시스템 간 호환성을 위해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표준화가 요구되며, 이는 전력IT 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잊지 말자.
◆이응로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공업연구사 erlee@ats.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