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재계·시민단체가 다같이 참여한 투명사회협약이 체결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 또 협약체결에 이어 각계가 이를 구체화하려는 노력을 가시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16일 “3월 9일의 투명사회협약 참여에 이어 그룹 차원에서 윤리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해 삼성경영원칙을 제정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시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점차 중요시하는 사회적 흐름에 맞춘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우리 대기업들은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해 왔다. IMF 때보다도 더 어렵다는 경제난 속에서도 지난해 우리 대기업들의 약진은 실로 눈부실 정도다. 우리 대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현대차가 자동차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깃발을 휘날리고 있고, 삼성은 이미 소니를 앞질렀다는 평이고,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우리 기업들이 석권하고 있다. 국내의 통신사업자들 역시 시장성숙과 불황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알찬 한 해를 보냈다. 유무선의 대표기업인 KT와 SK텔레콤이 1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냈고, 만성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던 LG텔레콤과 하나로텔레콤 역시 적자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아직도 대기업이 자신의 강력한 지위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횡포를 부리고 있어 이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볼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이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인 함성으로 들려오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투명하지 않은 관행에 익숙한 대기업의 보복이 무섭기 때문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불투명한 관행은 금융산업을 비롯해 우리 경제에 오래도록 뿌리를 내려왔다. 하루 아침에 없어질 관행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도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 참여정부 출범 당시의 기치였고 많은 국민이 이를 지지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우선적으로 주주에게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주주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진정으로 다하기 위해서는 소위 협력업체나 중소 규모의 공급처와 투명하고 대등한 관계를 정립해 나가야 하는 것은 상생을 통한 동반성장의 기본적인 틀이다. 선진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시민들에게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것도 바로 이를 제대로 지켜왔기 때문이다.
불공정 거래관행 문제의 심각성은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를 입버릇처럼 외쳐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진정한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는 정부의 지원이 아니라 오히려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하는 중소기업의 가장 큰 고객인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투명하고 원칙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시장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인 것만으로 부족하다면 법·제도적인 접근도 불사할 정도로 시급하다는 사실을 당국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의 불평등관계는 제조업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첨단기술산업의 상징인 IT분야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부가 가치산업이란 SW 분야 기업들이 겪는 서러움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SW산업의 생명력은 기술이나 지적재산권에서 나온다. 국내 대기업들은 지난 몇 해 동안 자신들의 지적재산권 확보와 강화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초대형 외국기업이 가진 기술에 대한 대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대기업들은 작은 외국기업의 기술에 대해서도 꼬박꼬박 기술료를 지급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중소기업들이 개발·보유한 기술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 지급을 극구 부인한다. 상생의 논리가 아니 힘의 논리로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고자 하기 때문일까.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 때문일까.
며칠 전 대표이사 자리를 떠난 안철수 사장의 일간지 인터뷰 내용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중소IT기업은 근본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없는 운명’이라는 표현은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의 일자리를 가장 많이 책임지는 중소기업 경영인들의 공통된 절규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투명경영, 윤리경영,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이것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양유석 중앙대학교 교수 yooyang@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