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텔레콤의 와이브로( 휴대인터넷) 포기는 업계와 정책당국에 몇 가지 의미있는 교훈을 준다.
“통신은 더는 가입자를 볼모로 잡고 버티던 ‘대마불사’의 신화가 아니다. 또 사업권만 따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다. 장사가 안 되면 엄청난 투자비만 날리는 어느 업종보다 리스크가 큰 사업일 뿐이다.”
하나로의 선택은 이 같은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와이브로사업 포기선언 직후 하나로의 주가는 오히려 껑충 뛰어올랐다. 사업권에만 올인하면 돈을 벌던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현상이다. 단기차익을 우선시하는 투자자들의 속성을 감안한다 해도 변해도 한참 변한 통신시장의 현주소를 웅변해 준다.
그래서 통신업체들의 고민이 깊다. 성장엔진 확보를 위해선 투자를 해야 하는데 리스크 부담이 너무 크다.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통신사업 특성상 당장의 주판알로 재단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와이브로는 하나로 입장에선 유선에서 무선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교두보였다. 미래의 비전을 보장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업이었다. 그런데도 포기했다. 오죽했으면 하는 심정으로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회사의 가치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사업권이 기업가치’라는 등식은 비록 깨졌지만 신성장동력이 없는 기업이 얼마나 가치를 가질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외국인 주주문제도 도마에 올릴 만한 사안이다. 거창하게 통신주권을 얘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장기 비전을 담을 기업의 성장엔진을 단기수익에 목말라 하는 외국인 주주들의 눈에 맡기는 게 과연 맞느냐 하는 의문은 남는다. 이 문제는 이제 수익성이 보장 안되는 통신시장 환경변화와 함께 동전의 양면처럼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누가 뭐래도 이번에 가장 당황한 곳은 정책당국인 정보통신부일 것이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화된 꼴이다. 벌써부터 ‘실패한 정책’이라는 오명과 더 나아가 ‘IT839 전략’까지 훼손하는 입방아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주무당국으로서는 여간 부담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책이 실패했냐 아니냐는 분명 함부로 판단할 사항이 아니다. 이번 사안도 냉정하게 보면 와이브로 전체의 실패라기보다는 하나로의 실패다. 유무선 간 첫 격돌장에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 하나로의 조기낙마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무대감독을 한 정통부의 책임이 완전히 면해질 수는 없다. 조연배우의 실수로만 몰아가기에는 연출력의 문제가 너무 많이 드러났다. 먼저 타이밍이다. 당초 정통부가 와이브로에 기대했던 정책목표는 신규 서비스시장 창출과 이에 따른 후방(장비)산업과의 가치사슬 형성이었다. 4∼5년 전의 청사진이다. 당시엔 가능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사업자 선정을 미루다가 올 들어서야 확정했다. 통신기술 진화 속도에 대한 고려는 없는 듯했다. 이미 유사기술과 대체기술이 나와 당시 와이브로 장점을 상당부분 잠식한 상태였다. 바로 2년 전에만 사업자를 선정했어도 서비스 활성화는 물론이고 하나로의 낙마를 막을 수 있었다는 가정에서 하는 소리다. 그랬다면 정통부는 유효경쟁의 실패니 특정업체를 봐줬느니 하는 식의 뒷얘기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번 와이브로 포기를 계기로 정부의 사업자 선정 정책도 시장주도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각종 IT서비스가 이미 보편화된 마당이다. 그런만큼 앞으로 등장할 신규 서비스는 대체재 성격을 많이 띨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선 ‘줘도 고마워 하지 않는’ 사업권을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는 주파수 매매나 사업권 재판매 등의 형태로 시장이 판단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편이 낫다. IMT2000이나 1x EVDO의 예에서 보듯 정책당국이 기술진화를 정확히 예측하고 시장까지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와이브로 역시 그 선상에 있다.
정통부의 혜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기술과 서비스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하는 컨버전스 시대에 걸맞은 통신 정책이 필요하다.
김경묵부국장@전자신문, km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