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찾아서]LG필립스LCD

축구장 크기의 7.2배에 달하는 LG필립스LCD구미 6공장. 1만4000여 명에 이르는 LG필립스LCD 직원중 구미에서 일하는 직원은 1만1000명. 6공장에는 1600명의 전사(戰士)들이 있다.

지난 2일 오후. 세계 일류의 전쟁터, LG필립스LCD 구미 공장을 찾았을때 사무실은 어두컴컴했다. 세계 최강의 인력과 회사가 만들어내는 최첨단의 활기있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오해는 금방 풀렸다. 업무차 자리를 잠시 비울때도 직원들이 자기 자리 형광등을 스스로 끄고 나가기 때문이다. 빈자리에 형광등이 켜진 곳은 하나도 없다.

1000여평이 넘는 사무실에 직원 책상위로 손을 뻗어 닿을 만한 거리에 천장에서부터 2미터 가량 내려온 형광등 스위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그 끝에는 500원짜리 동전크기의 ‘절전’이라고 새겨진 파란색·붉은색 아크릴판이 달려 있다. 자리를 비울때 이줄을 답아 당기면 자기 책상위 형광등이 꺼진다. 무지막지하게 큰 사무실에 ‘절전’ 마크가 대롱대롱 오와 열을 맞춰 달려 있는 모습을 보면 차라리 경건해진다. 원가절감을 위해 군대처럼 움직이는 일사분란한 조직체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절전’운동이 온 회사에 퍼져 있을 만큼 이 회사는 요즘 원가경쟁력 확보에 혈안이다.

◇“윗사람부터 확실히 바뀌어라”=2002년 초 구본준 LG필립스 LCD 부회장은 ‘자기 변화 선언서’를 작성했다. 이를 임직원 앞에서 발표하고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뒀다. 다른 임직원도 마찬가지였다. 액자에 적힌 내용은 다양하지만 목표는 한가지 였다. 1등으로 변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변했으면 하는가’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임원들의 생각은 똑같았다.

LG필립스LCD 구 부회장을 포함한 임직원들은 이 선언서를 기초로 6개월마다 얼마나 변화하고 성취했는가를 조직원들로부터 직접 평가를 받는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임원은 ‘No.1 리더’로 선정된다.

◇부하 사원 이름을 외워라=임원들의 자기변화선언에 자주 등장하는 슬로건이다. 회사 조직원과의 벽을 없애기 위해 선택한 것이 부하 직원의 이름을 외우는 것. 자신의 조직을 리드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이름 외우기에 대한 중요성이 대두되자, 아예 ‘부하사원 이름 외우기’대회도 열렸다.

한 조직에서 무작위로 50명의 사원을 뽑아 3분 내에 얼마나 많은 이름을 맞추는가 하는 게임 방식으로 진행됐다. 많게는 수백명의 부하 직원을 이끌고 있는 임원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단순히 인사기록카드의 사진과 이름을 외워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임원들은 짬짬이 시간을 내 사원들과 일대일 ‘티타임’을 갖기 시작했다. 이름 뿐 만 아니라 가족 사항, 업무상 애로점, 회사에 바라는 점 등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친해지자=LG필립스LCD에는 대리·사원급 직원으로 구성된 ‘후레쉬 보드(Fresh Board)’가 있다. 이 팀은 구본준 부회장을 비롯해 매월 최고경영진과 미팅을 갖는다. 미팅과정에서 드러난 정보는 전사원이 함께 공유한다. 잦은 만남이 일어나면서 풋풋한 미담도 나왔다. 최고경영진과 임원의 가족을 위해서 ‘후레쉬 보드’ 구성원들이 감사의 카드를 동봉한 꽃과 케이크를 경영진과 임원 집에 발송하는 일이 생긴 것.

회사 경영진과 임원진들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다는 것을 파악한 회사원들의 작은 애정 표현이었다. 이런 노력은 영화 이벤트, 주말부부 사원가족 초청행사, 사원장기 자랑대회, 1일 30분 학습시간 운영제도 등도 만들어 냈다. 이벤트가 유독 많은 회사다.

◇IMF를 생각하라=‘1등 인재가 1등 기업을(No.1 Members No.1 Company)’. 지난 99년 구본준 체제가 들어서면서 생긴 말이다. 구 부회장의 추진력은 재계에서 유명하다. 구 부회장의 추진력을 담은 슬로건의 효과는 그해 바로 나타났다.

98년 세계 순위 5위에서 99년말에는 세계 2위로 올라 섰기 때문이다. 모니터용 TFT-LCD부분에서는 세계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기술에 있어서도 TFT-LCD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일본의 샤프, NEC,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등 쟁쟁한 기업들을 물리치고 자체 기술 개발로 세계 정상에 이르렀다.

LG필립스LCD의 ‘절전’으로 대변되는 원가경쟁력 강화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모태는 바로‘IMF’였다. 회사가 잘나갈 때 보너스를 받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해야 했던 그 시기를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회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절전’ 운동도, 자동문 안쓰기 운동도 IMF를 되돌이켜 생각하는 직원들의 애사심에서 시작됐다는 말이다.

“IMF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였습니다. 불과 몇년 안지난 IMF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게 우리 회사의 힘입니다.”LG필립스LCD 구미총무담당 손충근 상무의 말이다.

김상룡기자@전자신문, sr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