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의 순간들]김영섭 ARM코리아 사장(2)

IBM 근무 당시 IBM PC 탄생지인 보카 레이톤을 LG전자 직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왼쪽 두번째가 필자.
IBM 근무 당시 IBM PC 탄생지인 보카 레이톤을 LG전자 직원들과 함께 방문했다. 왼쪽 두번째가 필자.

(2)많은 것을 배웠던 IBM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의 건설현장에 있는 동안 힘든 점도 많았지만, 내가 배우고 보람을 느낀 것도 많다. 벡텔과 같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보았던 그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 방식은 상명하달 위주의 문화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이때 나는 ‘외국계 직장에서 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후에 이러한 평등한 의사소통 및 분권화된 의사결정 방식은 내가 회사를 운영해 나가는 기본 철학이 되었다. 또한 오랜 사투 끝에 제대로 설비가 작동되고 벡텔 측도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통과’ 인증을 해줬을 때는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대림산업에서 4년여 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IBM으로 직장을 옮겼다. 이직은 우연하게 이루어졌다. 중동현장에서 나는 아내에게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편지를 썼고 아내는 IBM 구매부에서 조달업무 담당자 모집광고를 보고 내게 알려줬다.

 이직할 당시 IBM의 사세는 대단한 것이었다. PC 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고 중대형 컴퓨터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선도자였다. 또한 외국기업이면서도 수입보다는 수출을 더 많이 함으로써 국민에게도 호감도가 매우 높아 당시의 대학생들에게는 입사 희망 1순위 기업이기도 했다.

 내가 일했던 국제구매부(IPO)는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의 국내 업체에서 부품을 사서 IBM 본사에 납품하는 일을 맡았다. 나는 IBM의 PC용 모니터를 비롯한 PC 본체, 인쇄회로기판(PCB) 등 부품 구매를 담당했다. 지금은 우리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기업의 설계 및 생산 능력이 선진 표준을 맞추기에 급급한 실정이었다.

 따라서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에게 설계 및 생산 그리고 품질 관리 노하우를 이전하는 것이 주업무였다. 이러는 과정에서 한국 업체들의 설계, 생산능력이 향상되면서 국산화율이 높아져 갔고 IBM 본사에서는 보다 많은 부품 및 완성품들을 한국에서 조달해 갔다.

 한때 IBM에서 판매하는 모든 PC의 70% 이상이 국산 모니터를 OEM방식으로 조달해 갔다.

 이때는 정신적으로 매우 안정이 되었는데 이는 ‘개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IBM의 조직문화와 좋은 직장에 대한 자부심 때문인 것 같다. 직원들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업무위주로 논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문화는 나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더불어 기술전수를 통해 우리 기업의 발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생각과 수출을 통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자긍심도 나에게 만족감을 더해 주었다.

 수많은 거래를 하면서 나는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논리와 발표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IBM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시켰고 나는 이를 잘 소화 흡수했다. 나는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자주 만나는 편인데 그들의 도전 정신과 열성에도 발표력 및 논리적 협상능력이 뒤처지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과 서비스가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감복하지 못한다면 비즈니스는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협상과 설득, 그리고 프레젠테이션 부분에 있어서는 아주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다.

 sam.kim@ar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