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정보전쟁의 중요성](https://img.etnews.com/photonews/0510/051017104000b.jpg)
허진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에는 (대부분이 전쟁이었지만) 대개 지도자들이 관련 정보를 기초로 정확한 국제 정세를 판단해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영국이 18세기 본격적인 제국주의 확장에 나서는 계기가 됐던 스페인 무적함대 격파는 정확한 정보수집과 판단에 따른 결과였다. 넬슨이 나폴레옹의 해군에 승리를 거둠으로써 사실상 나폴레옹의 몰락과 영국의 지중해 장악의 계기가 됐던 1798년 나일강 전투와 가장 가깝게는 상륙지점의 은폐를 위한 정보전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2차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역시 정보전의 중요성을 보여준 전투였다.
이러한 전쟁의 역사 외에도 1206년 즉위해 20년 만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도 기동력 중심의 전투력과 함께 다양한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에 그 큰 제국의 건설과 통치가 가능했다. 17세기 러시아를 근대 국가로 발전시킨 표트르 대제의 대 유럽 정책 등 오랜 기간에 걸쳐서 한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 가는 과정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라 간의 전쟁 못지않게 기업들도 소위 ‘총성 없는 전쟁’을 1년 365일 치르고 있다. 기업 간의 전쟁도 패배하면 그 기업의 존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각 기업은 그 나름대로 여러 방편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사 기술 보호를 위한 삼성전자의 필사적인 노력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간의 인력 유출 전쟁 △하이닉스의 반도체 산업 스파이 사건 등 대기업 나름대로 기업 비밀 유출 방지와 경쟁사 동향 파악, 인력 유출 방지 등 여러 측면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들도 최소한 경쟁사 동향 파악 등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그만큼 정보는 국가나 기업 간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포메이션과 인텔리전스를 모두 ‘정보’로 번역해 혼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전쟁에 필요한 정보는 인텔리전스다. 이러한 정보는 국가나 기업 모두 생존의 차원에서 다뤄야 할 전략적 요소 중 하나다.
최근 불법 감청 논란을 보면 과거 일부 정권에서 국익보다는 자신의 정치 세력 및 정권 유지 차원에서 정보 조직을 사조직처럼 불법 이용한 것이 드러나고 있다. 그 행동의 불법성뿐 아니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를 사적으로 남용한 일부 정치인의 비도덕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지 국익을 위해서 대내외적으로 이러한 정보 조직의 운영은 필수적이다. 일부 정치 세력이 사조직화하는 것이 나쁜 일이지, 정보를 다루는 본연의 역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정보 조직의 원래 목적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며, 오히려 국익을 위해 더 전략적으로 강화하고 잘 활용해야 한다.
기업이나 국가나 기본적 목표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다. 그 기본이 충족돼야만 기업은 종업원에 대한 배려, 사회에 대한 책임 등을 고려할 수 있고 나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오랜 기간 독재 정권하에서 기본권을 유보하고 살아왔지만, 결국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이 이루어진 후에 보편적인 의식의 진보에 의해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경우를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내가 가본 아프리카의 한 나라에서는 이미 60년대에 우리보다 소득 수준이 높았고 민주화도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었지만, 경제적으로 아직도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본 수많은 젊은이에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고 있지 못한 모습을 보며, 결국 경제가 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불법 감청이 일부 정치 세력의 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된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밝혀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보 조직 자체를 훼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국력과 국익이란 정치적인 올바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략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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