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규제기구

 미국은 적어도 오늘날과 같은 통·방융합 시대에 지구촌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임이 틀림없다. 믿기지 않겠지만 미국에서는 통신과 방송을 함께 규제할 수 있는 융합기구가 70여년 전인 1934년에 만들어졌다. 그 유명한 연방통신위원회(FCC)다.

 규제기구 개편이 먼저냐 규제철학 정립이 먼저냐를 놓고 유관기관끼리 몇 년째 티격태격하는 우리나라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FCC가 처음부터 통·방융합을 예견해서 만들어진건 아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그렇게 성격이 규정된 것이다. FCC가 돋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정책 기능과 규제 기능을 동시에 가졌다는 점일 것이다.

 FCC에 근접한 게 일본 총무성이다. 총무성 역시 통신과 방송을 모두 관할하고 정책입안과 규제기능을 함께 갖고 있다. 일본은 나아가 총무성의 통·방융합 규제·정책기능과 문화과학성의 문화콘텐츠 진흥기능을 묶은 새 기구 발족을 논의중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 가운데 이탈리아·호주·말레이시아 등은 통신과 방송을 한 묶음으로 보고 정책기구와 규제기구만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정책기구는 통·방융합이 이뤄졌지만 규제기구는 분리된 사례다. 반대로 영국과 캐나다는 규제기구는 융합했지만 정책기구는 분리돼 있다. 이들 나라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의 모델을 따를 것이다.

 최악의 모델은 우리나라다. 통신과 방송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돼 있고 영역마다 정책기구와 규제기구도 모두 다르다. 그렇다고 각 기구의 역할 범위가 영역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통신 부문의 정책기능은 정보통신부가 장악하고 있지만 규제기능은 정통부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나눠갖는 형국이다.

 방송 부문은 더욱 복잡하다. 정책기능은 방송위원회와 정통부, 문화관광부가 모두 관여한다. 그러면서 규제기능은 방송위와 정통부로 이원화돼 있다. 보통 헷갈리는 게 아니다. 그나마 자위할 수 있는 것은 프랑스와 독일이 우리와 같은 모델이라는 점일 게다.

 엊그제 정통부의 새 장관 내정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통·방융합 정책을 제1의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미·일 수준은 어렵겠지만 부분 융합기구의 탄생이라도 지켜보고 싶다.

◆IT산업부·서현진부장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