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봉급쟁이 알베르트

 대부분의 천재가 그렇듯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어렸을 때는 지진아였고 아홉 살이 돼서도 말을 더듬었다. 그래서 그의 부모들은 아인슈타인이 지진아가 아닌가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열 살까지 다녔던 가톨릭학교에서도 아인슈타인은 권위적인 교육방식을 싫어해 늘 교실에서 말썽을 피우기 일쑤여서 부모 속을 어지간히 썩였다. 1900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을 졸업한 아인슈타인은 이듬해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창생인 밀레바 마리치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의 첫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마리치와 사이에 두 아들을 둔 아인슈타인은 가정보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결국 결혼생활에 종말을 고한다. 당시 일반상대성 이론에 푹 빠져 있던 아인슈타인은 첫 결혼의 실패에 개의치 않고 연구만 몰두했다. 그후 아인슈타인은 그를 간호하던 사촌동생 엘자와 새 가정을 이루고 특수상대성이론, 광전자이론(노벨상 수상), 통일장이론을 발표하며 현대 이론물리학의 거봉으로 역사에 남는다.

 얼마전 외신 보도에 따르면 엘자의 딸 마고가 지난 1986년 7월 숨지면서 20년 후에 공개할 것을 당부한 아인슈타인의 미공개 편지 130통이 번역 출간됐다고 한다. 가까운 친구, 친척들과 주고받은 이들 편지를 보면 아인슈타인이 젊었을 때 얼마나 박봉에 시달렸으며 천재 과학자도 연구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특히 자녀 및 이혼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그도 평범한 가장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는 이번에 공개된 한 편지에서 아들인 한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스키를 요구했을 때 “돈(70프랑)을 보내주기는 한다마는 스키가 우리 형편에는 맞지 않는 사치품인 것 같다”고 적어 빈곤에 쪼들린 가장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이혼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떨어져 살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두 아들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천재 과학자라면 연구실에 처박혀 자기 연구에만 몰두하며 가족이나 집안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마치 골방에 앉아 논어나 사서삼경이 밥을 해결해주는 줄 아는 ‘남산골 딸깍발이’를 연상한다. 이 책 출간을 맡은 다이애나 코머스 버치월드의 “알베르트는 월급으로 생활하는 평범한 과학자이자 고뇌하는 봉급쟁이”라는 말처럼 아인슈타인도 천재 이전에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지닌 인간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업적이 더욱 빛나 보인다.

홍승모 글로벌팀장sm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