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뉴딜이희망이다]3부-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3)하드웨어

 “드디어 정부가 그동안 외면해온 서버에 다시 관심을 가졌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작은 연구실 한편에서 서버와 씨름하며 고생한 것이 헛되지 않은 것 같다. 의욕이 생긴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미 서버 시장은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곳이고, 뒤늦게 몇 년 투자한다고 해서 쉽게 따라잡을 분야가 아니다.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다.”

 지난달 13일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그린IT 국가 전략을 발표하면서 PC, TV와 함께 ‘서버’를 월드베스트 그린IT 제품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서버 업계에서 엇갈린 반응이 쏟아졌다. 정부의 투자 방침은 희소식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함께 제기됐다.

 그만큼 정보기술 강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 IT 산업계에서도 난공불락으로 여기는 곳이 바로 서버·스토리지를 중심으로 한 IT 인프라 하드웨어(HW)시장이다. HP, IBM, EMC 등을 필두로 한 글로벌 서버·스토리지 기업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들다고 그냥 외면하기에는 너무 큰 시장이다. 서버·스토리지는 물론이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 IT 인프라를 지탱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까지 모른 척하고 지나가기에는 그 규모뿐 아니라 시장이 갖는 중요성 또한 크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당장 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 대열에 올라서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내 조금씩 경쟁력을 쌓아간다면 분명 지금은 갖지 못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다양한 테스트베드 사업을 벌여 토종 HW가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서버 ‘히트상품’을 만들자=지난해 국내 서버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굴지의 대기업 A사가 서버 사업을 접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무수한 억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A사가 계속 서버 사업을 이어간다고 공식으로 견지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뜻깊게 바라보지 않았다. 대부분 “대기업이 해도 못 하는 게 서버 사업인데 하물며 중소벤처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사실 서버는 지난 1980년대 정부와 산업계가 힘을 모아 개발한 토종 주전산기 타이컴(TICOM)의 실패 이후 국내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후 일부 업체가 x86서버 사업을 벌였지만 ‘규모의 경제’로 불리는 서버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의 공세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둘 사업을 포기했다. 현재 몇몇 업체가 사업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체 설계·개발은 사실상 포기하고 대만산 서버 보드를 수입해 CPU와 메모리 등을 결합해 판매하는 이른바 ‘조립서버’ 사업으로 전락한 상태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슬림코리아가 지난해 KT와 함께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직류(DC) 전원 서버를 개발해 새로운 시장 창출 기대를 높였다. ONS와 태진인포텍 등은 기존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비해 처리속도가 월등히 높은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DD) 기반 서버·스토리지로 역시 작지만 새로운 수요를 이끌어냈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아키텍처를 가진 서버를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는 힘들겠지만 기존 범용 서버를 바탕으로 특화된 제품을 만들거나 차별화된 솔루션을 탑재한다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기택 ONS 이사는 “SSD 서버는 아직 글로벌 기업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있는 분야다. 상대적으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국내 중소기업이 먼저 레퍼런스 사이트를 쌓아간다면 승산이 없지 않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을 주문했다.

 ◇IDC ‘그린IDC’로 앞서나가자=IDC는 서버·스토리지 등 IT 시스템을 비롯해 이를 외부로 서비스하는 통신네트워크, 전체 자원을 운용·관리하는 SW, 더 나아가 전체 시설을 구축·설계하는 컨설팅 서비스에 이르는 한마디로 모든 IT 요소가 결합한 복합체다.

 IDC는 이 같은 다양한 요소가 조화를 이뤄 기업의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이는 근간 역할을 한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미국 전자상거래업체 e베이의 폴 스트롱 부사장은 “e베이의 빠른 성장은 차세대 데이터센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IDC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IDC 산업 발전은 해당 IT HW·SW·서비스 산업의 성장을 가져오는 동시에 이를 이용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성과를 개선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가져온다. 국내 IT 산업 발전을 꾀하면서, 국내 경제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셈이다.

 다행히 지난해 말 정부가 IDC에 지식서비스용 전기요금제를 적용한 데 이어 올해 들어 IDC를 친환경 IT 구현을 위한 핵심 요인으로 꼽는 등 IDC를 향한 관심은 높아진 상태다. 업계는 이 같은 분위기를 이어가 정부 지원책이 구체화된다면 IDC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앞당기고, 더 나아가서는 수출형 IDC 비즈니스로의 발전도 이룰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국내 IDC 업계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불어닥친 경기침체 여파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홍철원 데이터센터장협의회장은 “친환경 설비는 특성상 초기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며 “정부가 이에 일부 보상지원책을 마련한다면 더욱 쉽게 IDC 산업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정부 지원에 앞서 업계 차원의 개선 노력도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일부 IDC 업체가 고객 확보에 급급한 나머지 이용요금 할인 등 ‘가격경쟁’ 양상을 보이는데, 먼저 ‘서비스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정부, 판로지원 절실

“먼저 만들어도 시장이 없으니 쉽지 않습니다.”

지난해 IT업계에 불어온 친환경 바람에 맞춰 직류(DC) 전원 서버를 개발한 이슬림코리아 윤영태 사장의 하소연이다.

DC서버는 수차례의 교류와 직류 전환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전력 손실이 발생하는 기존 서버와 달리 단 1번만의 전환으로 전력을 공급, 에너지 효율성을 높인 시스템이다. IBM, HP 같은 글로벌 서버 기업도 관심은 갖고 있지만 아직 시장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부 검토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림은 KT IDC가 DC 서버를 도입함에 따라 이에 맞춰 DC 서버를 개발, 일부 공급했다. 물량이 적다는 이유로 DC서버 공급에 난색을 표한 타 글로벌기업과 달리 소량이지만 수요 선점을 위해 한발 빠른 제품 개발이라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덩치 큰 글로벌 기업에 비해 의사결정 구조가 단순한 것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후 DC 서버는 예상보다 더딘 속도로 확산됐고, 아직까지도 별다른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윤영철 이슬림 사장은 “정부가 친환경 제품을 중심으로 서버를 월드베스트 상품으로 육성할 계획이 있다면 다양한 테스트베드 사업을 전개해 국내 업체의 판로를 먼저 열어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업체가 의욕적으로 준비중인 SSD 서버·스토리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기업에 한발 앞서 제품을 출시한 국내 업체의 SSD 서버·스토리지를 정부통합전산센터 같은 곳이 먼저 도입해 수요를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다.

지난해부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중심으로 진행중인 ‘차세대스토리지(NGS) 시스템’ 개발 사업이 좋은 예다. ETRI는 NGS 시스템 사업을 진행하면서 D램 기반 SSD 스토리지를 채택했다. D램 기반 SSD 스토리지는 현재 주를 이루는 플래시메모리 기반 SSD에 비해 성능과 속도가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태진인포텍 등 국내 중소 스토리지 개발업체가 참여하는 이 사업은 아직 글로벌 IT기업이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D램 기반 SSD 스토리지를 선행 개발하여 관련 시장을 선점한다는 구상아래 진행되고 있다.

이 사업은 현재 관련 업계 및 대학 연구교수를 비롯해 정부통합전산센터 등이 참여하는 코리아스토리지네트워킹(KSN)포럼과 연계돼 국내 스토리지 산업 발전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