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BIZ+] Cover Story- 협업 SCM이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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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 전만해도 잘 나가던 대형 제조기업들은 공장에서 찍어내면 내다팔고 구매하겠다는 소비자가 있어도 다 팔리면 그만, 안 팔리면 팔릴 때까지 물류창고에 비축해두는 모습을 보였다. 생산계획은 공장에서, 판매계획은 영업과 마케팅이 각자 알아서 세웠다. 시장의 흐름을 무시하고 공급업체의 조달 능력을 무시하면서 제조기업 물류창고에 비축된 재고는 산이 되고 비용은 강물처럼 흘러나갔다. 공급망의 중요성을 깨달은 삼성전자·LG전자가 먼저 손을 댄 것은 판매운영계획(S&OP) 프로세스다.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단축하면서 소비자 반응과 판매 현황을 일 단위로 체크하고 있다. 그리고 단절됐던 업무 부문 간 정보를 공유해 생산판매 계획을 함께 세웠고 유통업체, 부품 공급업체와의 협업에 의한 상호공급계획예측프로그램(CPFR)을 구현하고 있다.

 ◇악성 장기 재고로 경쟁력 발목 잡혀=2005년 LG전자의 재고 일수는 삼성전자 대비 50% 이상 높았다.

 문제를 살펴보니 생산·판매·마케팅·구매 등 모든 부문이 판매계획과 생산계획 등을 단독으로 결정한 후 자재와 제품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고 있었다. 당시 LG전자의 휴대폰사업부 자재 재고의 20% 이상이 장기 재고로 판매와 구매의 격차가 매우 컸고 이는 재무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LG전자는 2005년 모니터사업부부터 시작해 업무별 담당자가 모여 판매와 생산 전략을 주 단위로 세우고 실행해나가는 주 단위 S&OP 프로세스 정립에 나서면서 재고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3년 후 LG전자는 전 사업부로 주 단위 S&OP 프로세스를 확산 적용시켰고 휴대폰사업부의 장기 재고 비율은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다.

 이렇듯 ‘하나의 계획’으로 모든 사업 부문이 움직이도록 했지만 생산계획에 시장의 살아있는 정보가 유입되지 않으면 재고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에서 전 세계 글로벌 생산 및 판매 거점을 수십개 운영하는 LG전자가 전 세계 제품 판매 현황과 향후 판매량을 예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를 위해 LG전자가 올해부터 추진하는 SCM2.0 전략의 핵심은 ‘협업’이다.

 1.0 시대에는 내부 사업 부문 간 협업에 초점을 맞췄다면 2.0전략부터는 외부 협력사와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유통업체들과의 정보 공유와 공동 예측을 강화하고 부품소재 협력업체들과도 더 빠르게 협업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는 계획이다.

 ◇CPFR로 판매될 만큼 생산하라=주 단위 S&OP 혁신에 한 발 더 일찍 나섰던 삼성전자는 LG전자가 주 단위 혁신을 시작한 2007년 당시 사업부별 주 단위 S&OP 프로세스를 어느 정도 갖춘 후였다.

 따라서 베스트바이·월마트 등 유통업체와의 판매계획을 위한 협업도 먼저 시작할 수 있었다. 미국 월마트의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 수요를 정확히 예측해 단 이틀 동안 비수기 한 달 물량의 TV를 판매할 수 있는 것도 유통업체와의 협업으로 삼성전자가 얻고 있는 성과다. 실판매 데이터를 공유하고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즌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되니 생산계획을 조절할 수 있게 되고, 이에 맞춰 삼성전자의 협력업체들도 적정량의 부품소재를 준비해 놓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성과는 삼성전자와 월마트의 CPFR 협력에 의한 것으로 삼성전자는 이 같은 협력을 TV에서 휴대폰으로, 북미에서 유럽으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유통업체와의 CPFR 협력에 나서는 이유는 셀아웃 데이터와 생산계획을 가능한 일치시키기 위해서다. 유통업체로의 판매를 셀인 데이터, 유통업체에서 소비자로의 판매를 셀아웃 데이터라고 부른다.

 사실 많은 제조업체가 셀인 데이터, 즉 유통업체의 창고 속에 쌓여 있는 재고량을 기준으로 생산계획을 짜다가 실제 매장의 판매 상황과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해 재고나 결품을 유발시킨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CPFR로 유통업체 소유의 셀아웃 데이터를 확보하고 유통업체와 판촉계획을 같이 수립하는 것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매출을 향상시키면서 재고 혹은 결품을 낮출 수 있는 윈윈을 가능케 한다.

 삼성전자 한 관계자는 “기존에는 독일 보다폰과 각사의 판매정책 및 단기 판촉정보만을 공유했다”며 “수요예측과 판매계획에서 유통업체와 차이가 생기는 경우 결품과 재고가 늘어 매출 하락 및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재는 보다폰에 의해 독일 전역에 공급되는 삼성전자 휴대폰 판매 현황을 일·주·월간은 물론이고 지역·제품별로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바로 CPFR 덕분이다. 소니는 CPFR를 통해 유통업체들의 매장 단위 재고와 판매현황을 파악하고 톱니바퀴 같은 공급망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또 유통업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약속한 날에 정확히 배송을 하고 맞춰 생산을 하는 것도 중요해졌다. 수 천개의 부품이 탑재되는 전자제품에서 단 하나의 부품이 없으면 완제품은 나올 수 없다. 이 때문에 수많은 부품소재 협력업체와의 협업은 필수사항이 됐다. CPFR로 일 단위 매장 판매 데이터를 빠르게 생산계획에 반영하기 위해 24시간 단위로, 즉 더 자주 협력업체들과 모든 계획을 공유해야 한다.

 글로벌 제조기업들이 추진한 SCM 혁신의 공통점은 주 단위 S&OP에 CPFR를 접목시키고 협업을 내부 사업부에서 외부 협력사로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위로는 유통업체와, 아래로는 부품소재 협력업체와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는 것은 시장 수요를 적시 예측해 적시 적정량을 생산해 유통하기 위해서다.

 또 이들이 성공적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전기전자·식품 등 많은 제조기업이 대기업들의 SCM 혁신 첫 단추였던 S&OP 프로세스 혁신에 뒤따르고 있다.

 대기업들에 부품을 납품하는 공급업체들 역시 대기업들의 짧아진 생산계획 수립 주기를 맞추기 위해 영업부문과 생산부문의 협업이 더욱 중요해졌다.

 국내 한 TV 부품업체 관계자는 “급박한 시장 변화와 긴급 주문 변동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강화하면서도 재고량을 줄여가야 하는 것이 과제”라며 “이를 위한 S&OP 프로세스 개선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