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2년 유리 및 세라믹 전문기업 코닝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유리는 깨지는데 우리가 이것을 해결해보면 어떨까?”라고 화두를 제시했다. 코닝은 `머슬(muscle:근육)`이라는 프로젝트 명으로 R&D에 착수했다. 곧 해당제품인 켐코(Chemcor)를 출시했다. 코닝은 이 유리를 헬기나 기차, 자동차용 유리로 판매하려 했으나 수요처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처럼 강한 유리는 필요 없다는 게 요지였다. 물론 가격도 일반 유리에 비해 비쌌다. 코닝은 판매를 포기했다. 그리고 코닝은 그 기술을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개발했지만 쓰임처를 찾지못한 기술을 선반위에 올려놓는다는 표현을 한다.)
50년이 지난 지금 코닝의 켐코는 `고릴라`로 이름을 바꿔 부활했다. 터치 기능이 보편화되면서 유리도 보호하고 스크래치도 방지할 수 있는 보호유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고릴라는 갤럭시S를 비롯 아이폰 등 220여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보호유리로 사용된다. 향후 LCD TV 보호유리로도 적용될 전망이어서 코닝은 내년 고릴라 유리에서만 10억달러(1조20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나라 건축자재 최대 기업인 KCC의 유리 매출이 연간 7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매출인지 짐작할 수 있다.
코닝의 또 다른 히트작인 LCD 유리 역시 기반 기술(퓨전공법)은 지난 1962년 개발됐다. 코닝은 이후 20년 뒤인 1984년 LCD 유리 생산을 시작했다. 코닝의 이 같은 저력은 끊임없는 R&D에 기인한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이 꺼지면서 100억달러를 투자한 광섬유 사업에서 55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전 세계 직원의 절반을 구조조정했을 때도 코닝은 R&D를 지속했다. 코닝의 R&D 정책은 DNA처럼 본능에 가깝다. 국내 기업들의 선반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다. 특히 최근과 같이 상용화에 초점을 맞춘 기업 및 국가 R&D 정책으로 선반 위에 놓여질 기술마저 폐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