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맞은 유니박…손자뻘 스마트패드보다 440배 거구

환갑맞은 유니박…손자뻘 스마트패드보다 440배 거구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유니박과 태블릿PC의 성능비교

 1951년 6월 14일. 미국 인구 통계국에는 가로 2.4m, 세로 4.3m, 높이 2.6m, 무게는 13톤인 초대형 기기가 등장했다. 베이비붐 시대의 급증하는 인구 측정을 목적으로 도입된 이 기기가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 ‘유니박(UNIVAC)’이다.

 당시 유니박의 판매 가격은 100만달러(약 10억원). 1950년대 미국인의 월 평균 임금이 2992달러였으니 일반적인 직장인이 약 28년간 일해야 살 수 있을 정도로 고가의 장비였다.

 환갑을 맞은 유니박은 손자뻘인 스마트패드와 비교하면 가격도 2000배가량(스마트패드 500달러 기준)비싸고, 덩치는 440배 정도 크다. 발열량도 심해 52톤의 냉각수를 열을 식히기 위해서 써야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이터 처리속도나 저장용량에서는 오늘날의 스마트패드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부족했다. 데이터 처리속도는 2.5Mhz 비트레이트(Bit rate)로 스마트패드의 평균적인 처리속도 3Ghz 비트레이트의 1000분의 1수준이고, 내부 저장 용량은 단어 1000개 남짓이다. 스마트패드 16GB 제품에 책 5만권 가량이 저장 가능하다고 생각해보면 유니박의 저장용량은 덩치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동시에 이는 60년이라는 세월 동안 PC의 진화가 얼마나 급격하게 이뤄졌는지를 보여준다.

 덩치도 크고, 발열도 심하며, 속도도 느렸지만 유니박의 등장은 컴퓨터의 상업화 시대를 연 획기적 사건이다. 최초의 컴퓨터로 꼽히는 에니악은 주로 군사 목적으로 쓰였다. 반면 유니박은 1952년 제34대 미 대통령 선거에서 아이젠하워의 당선을 예측하면서 민간으로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의 웨스팅하우스 등에서 임금계산을 위해서 도입하는 등 1958년까지 총 46대의 유니박이 공공과 민간·학계에 판매됐다.

 유니박을 만든 레밍턴랜드사는 IBM과 경쟁 구도를 통해 컴퓨터 산업의 발전을 이끌기도 했다. 유니박의 창시자인 J.모클리와 J.P.에커트는 미국 인구 통계국의 요청으로 유니박을 만들던 중 자금난에 시달리자 이를 들고 당시 왓슨 IBM 사장을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진공관과 마그네틱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은 획기적이지만 진공관의 불안정성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IBM은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는 첫차를 놓치게 됐지만 이후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새로운 진공관 체제의 컴퓨터와 트랜지스터를 이용한 컴퓨터를 내놓으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동시에 보다 작은 크기의 집적 회로 등이 등장하면서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소형화가 가능해졌다.

 유니박은 이제 컴퓨터의 역사를 다룰 때나 등장하는 전설 속 주인공이 됐지만, 통계·연산·분석·저장 등 유니박이 없이 오늘날의 PC와 스마트패드의 존재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