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따라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지역에 정착해 사는 새를 ‘텃새’라 부른다. 또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이 뒤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 갖는 특권의식이나 뒷사람을 업신여기는 행동은 ‘텃세’라 한다. 이들 단어는 분명히 다른 의미임에도 어딘지 비슷한 뉘앙스를 풍긴다. 텃새가 철새를 상대로 부리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텃세’인 까닭이다.
사람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텃세가 있기 마련이다. 외지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텃새가 철새를 바라보는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텃세가 너무 심하면 부작용도 발생한다.
실제로 중앙에 근무하다가 지방으로 내려간 한 젊은 기관장이 얼마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비리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아는 지인들은 ‘텃세 때문’이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가 블로그에 남겨놓은 글에도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경기도에도 심한 텃세에 속앓이를 하는 기관장이 적지 않다. 한 기관장은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문제가 없음에도 대외적으로는 몹쓸사람이 돼버렸다. 현지 언론까지 나서 집요한 흠집내기에 그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도 “속은 이미 시커멓게 타버렸지만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며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곤 한다.
또 다른 인사는 기관장 시절 자신의 저서를 구입하는데 180만원의 업무추진비를 유용했다는 이유로 언론에 이름까지 공개되는 불이익을 당해야 했다. 심한 텃세에 시달리다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난 그였지만 퇴임후에도 텃세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그는 “업무와 관련이 있다는 조언에 따른 것이었고, 차후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개인비용으로 처리했는데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이런 텃세는 더욱 심하다고 한다. 그래도 경기도는 나은 축에 속한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욕심이 앞선 텃세는 부패로 이어져 사고를 부르기 마련이다.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도 더 이상 텃세의 제물이 나와서는 안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