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O BIZ]대기업-SW "라이선스 전쟁"...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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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정보책임자(CIO) 대상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한 제조기업 IT 임원. “A사(외국기업)와 소프트웨어(SW) 라이선스 이슈로 골치”라고 말하자 참석자 대부분이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석자들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는 반응이었다. 해외 SW 기업과 국내 기업 간 SW 라이선스 이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기업이 얽혀 있는 것으로 CIO들에겐 해묵은 골칫거리다. 구매자와 공급자 관계로 보면 `갑`과 `을`이지만 을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때에는 갑도 제 요구를 하기 어렵다는 것이 사용자 목소리다.

◇국내 기업 vs 다국적 기업 `오랜 진통` 왜?=국내 대기업과 해외 SW 기업 간 갈등 사례는 도처에서 발견된다.

한 중견 제조업체는 외국계 B사 제품을 도입하고자 수년 전 영업 대리점과 단체구입(EA)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몇 년 후 갑자기 날아온 B사 공문에 발칵 뒤집혔다.

골자는 `당신 기업이 구입한 SW 라이선스 개수보다 더 많은 인원이 쓰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 EA 계약 당시 영업점 영업직원이 한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하는 본사 태도에 CIO는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CIO는 “계약 당시 대리점 영업 직원이 최소 단위인 200개만 구입하면 더 이상 사용해도 문제삼지 않겠다는 합의 하에 정당하게 계약을 했다”며 “경기가 나빠지니까 이 같은 내용을 무시하고 돈을 요구하고 있어 배신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회사는 결국 추가로 제품을 구입했다. CIO는 “당시 계약 내용을 설명해봤지만 `그래도 돈을 내라`는 것이 그 회사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경기 불황에 IT 투자가 급감했던 2008·2009년 모 외국기업의 `불법 SW 라이선스` 관련 영업 확대는 기업과 적지 않은 갈등을 낳았다. 대기업 대부분은 법적인 문제 확대와 사회적 이미지 실추 등을 우려해 요구를 받아들였다. 기업 CIO가 문제로 삼는 것은 때에 따라 변하는 IT 업체 태도다.

한 제조기업은 외국 기업과 한 차례 라이선스 이슈 이후 국산제품을 전사 표준으로 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외국제품 라이선스 관리를 담당하는 회계법인 직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강압적 태도로 죄인 취급을 했다”며 “더 이상 그 회사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다”고 말했다.

외국기업과 갈등을 빚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경쟁사 제품으로 바꾸려 하자 추가 비용을 요구해 몸살을 앓은 국내 대기업도 적지 않다.

전사자원관리(ERP) 패키지를 바꾸려던 국내 모 대기업은 `더 내야 할 금액이 있다`고 해서 협상으로 몇 달간 진통을 겪어야 했다. 계약 당시 기준을 놓고 협상이 계속됐지만 잘 마무리해야 차기 ERP 개발 과제를 수행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급했다.

최근 한 통신사도 ERP 패키지를 바꾸면서 기존 ERP 업체로부터 라이선스 추가지불 요구를 받았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다른 IT프로젝트에 해당 업체 제품을 구입해줬다는 후문이 돌았다. 외국계 기업 라이선스 비용 요구 부담으로 불가피하게 특정 회사 제품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자 일부 업체에서는 특정 외국계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까지 나타난다. 공공기관 IT 담당자는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라이선스 이슈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기분이 상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토로했다.

판매할 때 무엇이든 다 해줄 것 같다가도 담당자까지 바꿔가며 `법적 제재`를 하겠다는 SW 업체에 시스템 교체 카드를 내민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회사는 당시 두 회사 제품을 놓고 성능 테스트를 해 더 낮은 점수를 받은 회사 제품을 도입하기도 했다.

◇사용자도 `각성` 필요=갈등 당사자 간 등장하는 이슈는 `계약 당시 조건`이다. 애플리케이션 SW는 주로 모듈 기준이나 사용자 수 기준 여부, 데이터베이스(DB)는 CPU 또는 사용자 수 기준이 도마에 오른다. 기업용 SW 도입이 붐을 이뤘던 2000년대 초반 계약 당시 기준이 명확지 않았던 것이 후일 논쟁거리가 되는 것이다.

정가(List Price)와 실제 구매가가 다른 때도 많다. 정가의 10%에 구매가 이뤄지는 때가 있었을 정도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오라클 등 SW 기업은 홈페이지에 가격을 명시하고 해당 가격대 거래를 권유하고 있다.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선 사용자 스스로 계약 당시부터 명확히 기준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조언이다. 국내 한 IT서비스기업 관계자는 “사용자 입장에선 불법 SW를 쓰는지 모르고 사용하는 일이 많아,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면서 “계약 당시부터 자세한 검토를 거쳐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조언했다.

계약 이후 임직원 수가 확대되면서 자연스레 늘어난 사용자 수 등은 SW 기업의 주된 공격 대상이다.

한 CIO는 “영업 담당이 먼저 문제를 제기하면 다른 제품으로 변경할 것을 우려해 스스로 눈 감아주고 사용자는 잘 모르고 쓰게 되는 일이 있다”면서 “이후에 SW업체 사정이 어려워지면 예전 일을 거론하며 비용을 요구하고 이 과정에서 양사 감정이 상하는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사용자가 `영업할 땐 눈 감아 주다 어려우니 가격을 매긴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배경이다. 이 때 사용자와 SW기업 간 정기적 합의로 계약을 갱신할 필요가 있다.

◇주요 SW라이선스 이슈 배경과 개선책

[CIO BIZ]대기업-SW "라이선스 전쟁"...누구의 잘못인가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