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첫 홈쇼핑은 1890년대 우편 카탈로그 판매를 시작한 미국 몽고메리워드가 시작했다. 국내에선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홈쇼핑이라고 하면 보통 TV홈쇼핑을 떠올린다. 하지만 홈쇼핑은 말 그대로 `안방에서 쇼핑하는 것`, 통신 판매를 말한다. 매체 성격에 따라 TV면 TV홈쇼핑, 인터넷이면 인터넷 홈쇼핑으로 나뉠 뿐이다.
TV 홈쇼핑은 지난 1995년 LG홈쇼핑(현 GS홈쇼핑)과 39홈쇼핑(CJ오쇼핑)이 시작했다. 인터넷 쇼핑의 경우 1996년 6월 인터파크와 롯데닷컴이 같은 날 개국했지만 인터파크가 2시간 먼저 문을 열어 최초라는 이름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TV 매체 구분 없이 국내 시장에서 홈쇼핑을 처음 시작한 곳은 이들 회사 중에는 없다. 주인공은 신문 잡지 같은 인쇄 매체를 통한 홈쇼핑 시장을 연 월드라(www.worldra.com)다.

◇ 대리점 모집 광고에 몰린 구입 문의="대선배죠. 무조건 최초. 자타가 공인하는 겁니다." 정말 국내 첫 홈쇼핑이 맞느냐는 질문에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자료를 내보이는 이흥순(58세) 대표의 표정엔 이런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 대표가 사업에 처음 손을 댄 건 군 제대 1년만인 28살 때다. 자장면 요금이 700원 하던 시절이지만 당시 쓰이던 DDD(Direct Distance Dialing·장거리 자동전화) 요금은 서울-부산 통화하려면 3,000원은 내야 할 만큼 비쌌다. 육군통신장교 출신인 그는 DDD 전화 무단 사용을 방지하는 제어장치를 만들었다. 개인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2년 만에 법인(화흥전자)화하고 직원도 50여 명까지 늘었다.
좋은 시절도 잠시. 2∼3년 지나니 경쟁업체가 20여 개 부지기수로 늘어났다. "당시 부도 액수가 4억 4,000만원 정도, 지금으로 따지면 44억원 됐죠." 32살 청년은 일찌감치 부도라는 쓴맛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젊은 이흥순의 경험은 후일 탄생할 사업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신문에 대리점 모집 광고를 냈는데 대리점 하겠다는 사람보다 소비자 전화가 더 많더라고요." `어? 통신판매 이것 좀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고 한다.
통신판매에 어울릴 만한 아이템을 만난 곳은 여성잡지사다. 3년간 여성지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다른 것보다 여성용품 판매량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성 소비력이 대단하더라고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
1991년 자신과 아내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와 민흥월드 홈쇼핑을 설립했다. 처음부터 통신판매를 염두에 뒀던 그는 신문과 잡지를 이용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가 수만 명 수준으로 올라가자 1993년 직접 통신판매 책자를 내놨다. 20대에 봤던 통신판매의 가능성은 1994년 일본에서 수천 가지에 이르는 아이템을 책자로 파는 걸 직접 접하면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국내 첫 홈쇼핑이 탄생한 순간이다.
◇ 키 성장 기능 식품으로 친 장외홈런=잘 벌었다. 1995∼1997년까지 3년 동안 호경기가 이어졌다. "1년에 강남에 있는 당시 3억짜리 35평 아파트(현 10∼20억원)가 두 채씩 순이익으로 떨어졌어요. 미국에 수출 100억불을 기록하기도 했죠." 월드라는 특이하게도 단순 수입이 아니라 직접 제조를 해 수출까지 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에게 여성용품 개발은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었다. "직접 제조 왜 했냐고요? 돈 많이 남기려고 했죠. 허허. 뭐 하러 이런 걸 수입까지 해야겠냐 싶더군요. 복잡한 시스템도 만들었는데 마사지 기기 같은 건 눈감고도 만들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수출도 잘 됐어요."
잘 될 것 것만 같았지만 IMF를 거치고 2001년 잘 나가던 회사는 다시 20억 원에 이르는 부채를 껴안았다. "다 까먹었죠. IMF도 있었지만 대기업이 만든 TV홈쇼핑이 수백만 부에 이르는 책자를 몇 년 내니까 어느 틈엔가 우리 고객이 다 사라졌어요." 다시 무일푼이 됐다. 한 때 60∼80억 원이던 연 매출은 11억 원으로 줄었다. 100여 명이 북적이던 사무실에는 7명만 남았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어요. 은행에선 담보도 안 잡아줘서 생명보험에 가서 1억 5,000원 담보 잡아서 제품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제품이 보령월드라키즈다. 마케팅과 제품 기획은 월드라, 기술과 제품 제작은 보령제약이 참여한 키 성장 기능 식품이다.

이 대표는 당시 유행하던 다이어트 제품보다는 아이들에게 건강을 남겨줄 수 있다는 이유로 키 성장 기능 식품에 주목했다. 제품 기획에도 적극 참여했다. "몇 년 동안 홈쇼핑 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다 녹이려고 했죠. 제품 패키지 색상도 직접 골랐고 당시 타사 제품은 영양분을 17∼20가지만 썼지만 이 제품은 47개로 늘렸어요."
홈쇼핑 방송에는 직접 출연도 했다. 처음엔 시원찮았지만 한 번 불이 붙더니 반응은 식을 줄 몰랐다. 속된 말도 대박을 쳤다. 2008년까지 23만 명이 보령월드라키즈를 찾았다. 단일 제품 하나로 매출 600억 원을 넘겼다. TV 홈쇼핑에서 1,000회 이상 방송을 돌파한 유일한 제품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건강 식품 중에선 정관장 홍삼 다음 가는 최고 히트 상품이 됐어요." 이 제품은 지금도 가장 많이 팔리는 최장수 키 성장 기능 식품이다.
◇ "70세까지 청바지 입고 뛸 겁니다"=대박 제품 덕에 부채도 다 갚고 사옥을 옮기면서 현금 30억 원을 거머쥐었다. 이 대표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홈쇼핑 방송을 중단하고 인터넷 TV 홈쇼핑을 준비했다. "사실 모은 돈으로 그냥 주식이나 부동산이나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무슨 패가망신할 일 있냐`며 아내가 말렸다며 웃는다.
인터넷 TV홈쇼핑은 기존 TV홈쇼핑과 인터넷 홈쇼핑의 장점만을 결합한 형태다. 이렇게 창립 20주년을 맞은 지난해 문을 연 월드라TV(www.worldra.tv)는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내내 9개 채널 생방송을 실시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은 이 사업이 미지수라고 말한다. "인터넷으로 오니 소비 패턴이 너무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TV홈쇼핑만 해도 그냥 보고 마음에 들면 샀지만 인터넷에선 열심히 보더니 가격 비교로 가더라는 것이다. 1년 동안 10억 원을 투자했지만 그래서 아직 이 시장은 미지수라고 말한다.
"그래도 꼭 해야죠. 인터넷 TV홈쇼핑을 전 세계가 볼 수 있게 하는 날이 제 꿈입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 2∼3년 안에 자막 등을 통해 해외 직접 판매도 추진할 계획이다. 올 초에는 미국 뉴욕에 지사도 만들었다.

콘텐츠 격인 제품도 더 전문화할 계획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600여 종에 이르는 상품을 팔았지만 이젠 10여 종, 전문화에 초점을 맞춰 집중 육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핵심 격인 보령월드라키즈는 제품 출시 10주년을 맞아 올해 중반 네 번째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인다. 5월부터 6대 주요 TV홈쇼핑 판매와 중국과 베트남, 미국 수출도 추진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선 한참 동안 "기도하면 이뤄진다"며 조셉 머피의 <잠자면서 성공한다>는 책을 한 권 쥐어준다. "제가 사는 방식이요? 긍정의 법칙이고 신념의 법칙 그게 제 방식이에요. 60세에 성공한 사람도 많은데 힘들 게 뭐가 있겠어요." 58세. 그는 아직도 꿈을 꾼다고 말한다. 꿈이 뭐냐 했더니 70세가 되면 3,000억 원짜리 기업 만들겠다는 답을 내놓는다. "70세까지는 청바지 입고 뛰겠다"나. 쥐어준 책을 들고 나오면서 펼쳐보니 딱 맞는 문구가 보인다. -건설적인 생각이야말로 당신의 잠재의식에 저축되어 풍부와 번영을 약속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