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정의 어울통신]유연한 조직이 이긴다

[박승정의 어울통신]유연한 조직이 이긴다

속도의 시대다. 특히 기술과 사회의 변화가 빠르다.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면 기업도 개인도 살아남기 힘들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초연결 시대의 빠른 기술 흐름과 정세 변화 속에서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경쟁 대열에서 뒤처진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보라. 한때 자원이 풍부하고 앞선 문물도 받아들였지만 산업화에 뒤처지면서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전환기 산업화 시대의 경제적 패러다임 적응에 실패한 탓이다. 그리스와 스페인은 현재 진행형이다. 금융·사회 인프라와 제도가 앞서 있었으나 정보화 시대의 경제 체제에 대비하지 못해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래런 애스모글루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A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석은 의미심장하다.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의 차이는 `제도`라는 것이다. 기존의 지리, 역사, 인종적 조건이 아니라 제도 차이로 본 것이다.

두 교수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제도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속도 시대의 정치·경제 제도의 중심에는 국가 조직이 있다. 제도를 운용하고 실행할 조직의 형태에 따라 효율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부 조직의 유연성을 얘기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특히 그렇다. 미·일·중·러 등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이들 국가의 사상과 철학이 유일한 답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만의 창의적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 중지가 모인다.

국가 조직이 권위주의·보수적일수록 변화에 둔감한 법이다. 권위주의적 정치세력이 주도했던 영국과 프랑스는 어떤가.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미국에 헌납한 영국·프랑스는 정부 조직을 수시로 바꾼다. 변화와 혁신으로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은 조직 개편으로 변화를 시도한다. 연례행사다. 조직 변화로 시대 흐름에 따른 혁신을 완수하기 위해서다. 창조적으로 혁신하지 않은 기업에 미래는 없다. 오죽하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고 했겠는가.

변화를 거부하거나 혁신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세력은 기득권일 때가 많다. 기득권은 종종 변화와 혁신의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이해에 직면하면 실체를 드러낸다. 성장의 활력이 떨어지면 국가 조직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정부 조직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미국은 정부 조직을 바꾸지 않고도 세계 최강국 지위를 50년간 유지해왔다는 논리다.

함정이 있다. 미국은 연방제다. 연방 조직은 바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주별로 조직과 법률이 제정, 시행되고 있다. 주 조직은 수시로 바뀐다. 법률도 필요에 따라 제정하고 폐기 처분하기를 반복한다. 미국 힘의 원천이다.

부쩍 정부 조직 개편 무용론이 나온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대선 후보 3인이 정부 거버넌스를 바꾸겠다고 하면서부터 더욱 심해졌다.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를 바꾸자는 논의가 공론화하고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등을 신설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그렇다.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조직이 없는데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속도 시대의 새로운 거버넌스의 핵심은 유연한 조직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일·중 등 주변 초강국의 지도자가 바뀌고 우리 역시 대선을 앞뒀다. 전환기의 국가 조직은 기득권적 이해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정부 거버넌스 변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득권적 조직의 보수성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유연성을 얘기할 때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