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업계 `WAVE` 파도 밀려오는데, 정부 및 산업계 갈팡질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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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가 낀 날, 1㎞ 전방에서 추돌사고가 났다는 정보가 차로 수신된다. 연이어 앞에 있던 차들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는 정보가 날아든다. 속도를 줄이고, 이 정보가 연이어 뒤차들에 전달돼 다중 추돌사고를 방지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이처럼 차와 차(V2V) 또는 차와 노변기지국(V2I) 간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자동차 사고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량 간 무선통신(WAVE:Wireless Access in Vehicular Environment)`으로 명명된 이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뜨겁다. 그러나 세계 5위 자동차 대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관련 주파수 할당이 늦어져 기술개발이 뒤처졌다.

23일 방송통신위원회와 전파연구원,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선 아직 `웨이브(WAVE)`용 주파수 할당이 이뤄지지 않았다. 자동차 업계가 요구하는 5.850~5.925㎓ 주파수를 이미 방송 업계에서 이동중계방송용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 이 주파수가 절실한 것은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에 의해 국제표준으로 지정된데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자동차 시장에 쓰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5.850~5.925㎓, 유럽은 5.855~5.925㎓를 웨이브용 주파수로 쓴다.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 자동차 업계는 내수용과 수출용 주파수를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파 회수권을 가진 방통위는 방송 업계가 쓰는 주파수를 회수하고 다른 주파수를 부여하는 데 난색을 표한다. 전파 자원이 한정된데다 방송장비 교체비용을 전액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자동차와 방송 업계가 이 주파수를 공유하기를 바라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지난해 말 실시한 실측에서 두 업계가 주파수를 공유하면 전파간섭이 일어나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전자부품연구원에서 관련 인프라 기술개발을 마쳤지만 활용하지 못했다. 주파수 미할당으로 시장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만도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웨이브 관련 기술개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우리와 달리 미국과 유럽은 웨이브 기술 도입에 적극적이다. 기존 레이더를 사용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달리 사물탐지 거리(1㎞), 범위(360도)가 월등하기 때문이다. 웨이브 기술을 활용하면 사고발생률을 80%까지 줄인다는 미국 연구보고서도 있다. 미국 교통부(DOT)는 오는 8월 웨이브 기술 의무장착 법제화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2017년부터 출고 시 의무장착된다. 유럽도 비슷한 시기 도입이 유력하다. 양국 자동차업체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동으로 웨이브 기술을 개발한다.

전파연구원 관계자는 “가능하면 해당 주파수를 자동차와 방송 업계가 공유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며 “상반기 경기도 여주에 구축한 실측 도로에서 전파 간섭 실험을 한 번 더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웨이브(WAVE)=차량 환경에서 무선 접속(Wireless Access in Vehicular Environment)의 영문 약자. 기존 교통체계에 첨단 IT를 접목한 ITS(Intelligent Transportation System)의 일종이다. 차량과 차량, 차량과 기지국, 차량과 이동통신기기 간 통신이 가능해 선진국 중심으로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는 기술로 각광을 받는다. 미국과 유럽이 도입을 앞뒀으나 한국에선 주파수 분배 문제로 도입이 늦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