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산하 공공기관장 인사작업이 재개될 모양이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지난 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모두 갈아치우자 `지나친 처사`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번엔 더 심하다. 임기가 끝나거나 사퇴해 자리를 비운지 수개월이 지나도록 새 기관장을 임명하지 않아 업무 공백을 호소하는 기관이 한 둘 아니다. 새 정부가 창조경제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걸었지만 이를 민생에 전파할 공공기관은 기관장이 없어 식물기관 상태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청와대 참모나 부처 장차관 인사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루 속히 적임자를 선별·임명해 더 이상의 업무 공백사태를 막아야 한다.
![[ET칼럼]공공기관장 인사는 실패 없길](https://img.etnews.com/photonews/1309/471610_20130901191005_998_0002.jpg)
공공기관장 인사는 지난 6월 올스톱됐다. 잇따른 금융지주 인사를 둘러싸고 관치 낙하산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낙하산인사를 혐오했다. 지난해 대선 직후 “전문성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선임해 공기업·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하면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될 뿐 아니라 잘못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업무와 무관한 정치 낙하산을 없애고 전문성 있는 인재를 공공기관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산하기관과 공공기장으로 임명하도록 해 달라”고 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뒤 나온 인사가 산은금융지주 회장 인사였다. 새 정부 첫 공공기관장 인사가 대통령이 그토록 싫어하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공공기관장 인사 절차가 진행되면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 있다. 전문성과 능력이다. 그리고 정부가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낙하산으로 임명된 기관장은 소신 경영을 하기 어렵다. 기관 경영보다는 정부 눈치를 보는 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나 결단력 있는 조직운영도 기대할 수 없다. 임기 내내 복지부동하다 보니 기관 경쟁력은 물론이고 국가 경쟁력까지 좀먹는다.
기관마다 임기나 사정이 다를 텐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인사 물갈이 하는 것은 여러모로 낭비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괜히 하는 게 아니다. 능력 있는 기관장은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전문성과 능력을 갖춘 인재를 확보하려면 폭 넓은 인력풀을 갖춰야 한다. 과거 정부가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도 빤히 들여다보이는 엷은 인력풀 때문이었다. 관료나 교수, 특정 집단 출신이라고 모두 결격사유는 아니다. 특정 대학이나 지역 출신 많다고 제외하고 빼고 나면 쓸 사람이 없다. 지연·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발탁해서 능력 발휘할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초당적 인사도 필요하고 대승적 관점에서 야당 출신도 과감하게 발탁하는 대범함이 필요하다.
사람을 쓰는 일은 더 없이 중요하다. 개 도둑이나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도 적재적소에 잘 쓰면 죽을 고비도 넘길 수 있다는 뜻의 `계명구도(鷄鳴狗盜)`라는 고사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60%로 높지만 인사 분야로 화제를 돌리면 한 없이 작아진다. 취임 전 국무총리 인선부터 장차관급 인사를 완료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을 넘었다. 벌써 기관별로 후보가 압축된 곳도 있다고 한다. 인선이 이미 늦어진 만큼 전문성과 추진력, 인성을 두루 갖춘 최적임자를 뽑아야 한다. 아무리 잘 된 인사에도 불만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투명하고 합리적인 인사에는 뒤탈이 없다. 공공기관장 인사는 밀봉·수첩·깜깜이 인사로 구설수에 오른 박근혜정부가 다시 한 번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