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 했던 `모니터 도청' 현실로 ?

사진 속 제품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 속 제품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차량 한 대가 조용히 주차를 한다. 운전자의 시선이 향하는 건 5층 사무실. 그곳에는 한 외교관이 본국으로 보고할 중요 문서를 컴퓨터로 작성하는 중이다. 창문을 가린 사무실에서 그는 인터넷도 끊은 채 업무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니터에 작성하는 내용을 건물 밖 운전자가 엿보고 있다는 걸 몰랐다.`

영화 속에 나올 법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이는 실제 가능한 도청 기술이다. 흔히 `템페스트`로 알려진 전자파 도청이다.

흔히 도청이라고 하면 남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음성과 연관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전자파 도청은 영상도 복원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다.

이를 실제 증명해 보인 것은 네덜란드 과학자인 윈 반 에크다. 그는 1985년 발표한 논문(비디오 디스플레이(모니터)에서 방출되는 전자파:도청 위험?)에서 모니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수 백m 떨어진 곳에서 수신, 해독해 원래의 데이터를 재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도청 기술은 논문 발표 이전에도 알려져 있었지만 전문적인 지식과 장비가 필요한 어려운 기술이란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실험 결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부품들을 이용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미국은 일찍이 컴퓨터 장비에서 방출되는 전자파에 주목하고 `템페스트`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국방과 안보 분야에 활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3년 연방수사국(FBI)이 중앙정보국(CIA) 요원 앨드리치 에임스의 간첩행위를 적발할 때 이 기술을 사용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런 모니터 도청 기술을 수사에 활용하거나 대비하고 있을까. 아직 공개적으로 드러난 경우는 없지만 최근 국내 한 국가 연구 기관에서 모니터 도청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모니터 연결선과 모니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수집해 화면을 복원하는 문제에 대한 과제가 수행된 것으로 안다”며 “그 결과에 따라 주요 기관은 대응 조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활용 사례나 피해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우리 정부도 모니터 도청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정보보안 기본지침을 통해 전자파를 통한 정보유출 방지를 위해 주요 시설에 전자기파 차폐 장치나 필름 등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박주선 의원과 외교부에 따르면 세계 161곳의 우리 재외공관 중 외부 도청을 막기 위한 전자파 차폐시설이 설치된 공관은 23곳(14.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는 등 지침과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