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만의 體認知]<427>사물은 요물이다!

어느 날 몸에 지니고 있거나 가방에 넣고 다니는 소지품을 꺼내봤다. 책을 빼고 휴대용으로 갖고 다니는 기기나 소지품을 꺼내 하나씩 말을 걸어봤다.

자동차 키. 나의 발이 되어주는 자동차지만 키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된다. 자동차는 원하는 목적지에 보다 빠르게 데려다주고 손쉽게 이동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활은 삶의 여유가 사라지고 속도와 능률복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연락하고 싶거나 나에게 연락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휴대폰. 휴대폰이 없다면 그냥 연락하지 않고 살면 된다. 스마트폰으로 바뀌면서 손안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 세상, 길을 가는 사람이나 전철이나 버스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정보를 연결하기 위해 태어난 스마트폰이 결국 사람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명함. 나를 알리고 다른 사람을 아는 명함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지위와 소속부터 챙기는 수단이 되고 그것이 결국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좀 더 괜찮은 사진을 찍기 위한 소형 카메라. 카메라가 없다면 찍고 싶은 현상이나 사물을 그냥 눈여겨 관찰하면 된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기억을 연장시켜 주고 추억을 간직해주지만 사람이나 사물과의 애틋한 추억까지 찍어주지 않는다. 사진에 담긴 나의 기억이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내 생각과 느낌을 메모하는 볼펜과 만년필. 이것이 없다면 메모하고 싶은 걸 기억하고, 만약 생각나지 않으면 잊으면 된다. 잊지 않기 위해 찰나의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습관은 기억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좋은 습관이다. 소중한 아이디어를 붙잡아 주는 메모장. 없다면 아이디어가 다시 나오길 기다리고, 나오지 않는다면 안타까움만 남는다.

나는 오늘 어떤 소지품을 갖고 나왔으며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게 바로 나의 하루 일과를 방증한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