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월드컵 또 하나의 관문 '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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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출전 선수들이 32강, 16강에 앞서 통과해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도핑 테스트다. 금지약물을 복용했다가 적발되면 출전 정지, 선수 자격 박탈, 입상 취소 등 철퇴를 맞는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세기의 축구 스타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에페드린 복용으로 실격하기도 했다.

통상 도핑 검사는 대회 개최국이 함께 맡지만, 이번 월드컵은 사정이 다르다. 브라질 리우연구소가 지난해 세계반도핑기구(WADA)로부터 공인 취소를 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은 해당 업무를 스위스 로잔연구소에 대신 맡기기로 했다. 시료 운반 비용이 만만치 않을 뿐더러, 혈액 시료는 채혈 후 36시간 내에 분석해야 해 시간 싸움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올해 월드컵 도핑 검사는 더 엄격해진다. FIFA는 출전 선수 전원에 도핑 검사를 실시할 방침이다. 검사를 총괄하는 지리 드보락 교수는 “우리는 누구든, 언제든, 어디서든, 얼마든 약물 검사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3일 벌어진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간 개막전에서도 선수 전원이 도핑 검사를 받았다. 선수 전원에 대한 약물 검사는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도핑을 엄격하게 차단하는 이유는 시합 공정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선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도핑을 위협적으로 인식한 것은 약물 중독으로 목숨을 잃는 선수들이 나타나면서부터다. 1886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파리를 달리는 600㎞ 코스의 자전거 대회에서 약물로 인한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토머스 힉스는 경기 종료 후 졸도했다. 흥분제 과다 복용이 원인이었다. 심장발작, 빈맥, 간장손상, 이상흥분, 정서흥분 등 이 약물 남용 부작용으로 지적됐다.

60년대 도핑이 절정을 이루자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를 ‘일탈 행위’로 제재하기 시작했고, 196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위원회는 도핑 정의와 금지약물 목록을 마련했다.

도핑의 어원인 ‘도프(Dope)’는 원래 마약류를 뜻한다. 그만큼 위험하지만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얘기다. 약물 검사와 투여 행위는 지금도 끝없는 창과 방패의 싸움처럼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도핑 검사 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IST) 도핑컨트롤센터(센터장 권오승)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전체 검사 시료의 2% 가량에서 꾸준히 양성 반응이 나오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최우수선수(MVP)였던 그리피스 조이너(미국)의 일화도 유명하다. 그는 육상 여자 100m 세계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고 10년 뒤인 1998년 사망했다. 올림픽 당시 도핑 검사를 피해 최신 약물을 복용했는데, 이 때문에 수명이 단축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쓰는 약물은 ‘아나볼릭-안드로게닉 스테로이드’로, 흔히 ‘스테로이드’로 약칭해 부른다. 남성 호르몬과 비슷한 물질이기 때문에 남성적 특징이 강화된다.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근육을 빠르게 키우고 근력도 세진다. 피로 회복과 집중력 향상 효과도 있다. 에너지 대사 속도를 높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내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신체가 전반적으로 과다 흥분 상태에 빠지는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반대로 사격이나 양궁 등 조정 능력이 요구되는 종목에서는 혈압강하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복싱·유도·태권도 같은 체급 경기에서는 이뇨제를 복용해 체중 감량을 시도하는 사례가 있다. 이뇨제는 또 소변량을 증가시켜 약물 농도를 묽게 하기 때문에 도핑 사실을 은폐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선수 스스로 피를 뽑았다가 게임 직전 집어넣어 산소 운반량을 증가시키는 등 기상천외한 수법이 늘고 있다.

이에 맞서 도핑 검사도 강화되는 추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경기에 출전한 아사파 파월(자메이카)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도핑 검사를 심하게 한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대회 조직위원회는 직전 대회였던 아테네 올림픽이 ‘약물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썼던 것을 감안해 무려 4500회의 도핑 검사를 실시했다. 4년 전 3600회에서 25% 증가한 횟수다. 대회 시작 전 12건, 시작 후 7건의 도핑 행위를 적발해냈다. “역대 올림픽 중 가장 엄격한 검사를 할 것”이라던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약속을 지킨 셈이다.

생체여권제도도 확대되고 있다. 선수 개인의 혈액과 소변 검사 결과를 누적해 여권처럼 소지하게 한 제도다. 연속적인 생체 지표 변화를 현역 생활 내내 추적할 수 있다. 육상과 사이클에 이미 적용됐고, 올해 월드컵을 계기로 FIFA도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최근 화두는 고분자량 단백질 약물, 유전자 약물, 세포 치료제 등 신형 약물이다. ‘스몰 케미컬’로 불리는 저분자량 화합물 위주로 검사하는 기존 장비로는 걸러내기 어렵다. WADA는 올해 각국 도핑 검사 기관에 이런 종류의 신형 약물 수십 종을 지정해 시급하게 대비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스위스와 독일 등은 관련 장비와 인력을 확충하고 있고,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우리나라도 대비가 필요하다.

권오승 KIST 도핑컨트롤센터장은 “도핑 적발을 피하기 위해 신형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효능이나 성분이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며 “검사도 어렵지만 더 치명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