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용 해심원 CEO “다시마차 20년, 새로운 기회 열어줘”(인터뷰)

커피, 녹차, 율무차……. 거기서 더 보태면 둥글레차, 보리차 정도 떠오를까? 차를 종종 마시긴 했지만 ‘다시마차’가 있다는 것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헌데 이 차가 국내에서 판매된지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는 사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이 제품은 안다는 사람만 아는 귀한 차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업체는 ‘해심원’ 단 한 곳으로 이선용 대표가 어머니에 이어 2대째 사업을 이끌고 있다.

20년간 진득하게 사업을 이끌어온 내공을 듣기 위해 이 대표의 사무실을 직접 찾았다. 그녀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거기에 귀 기울이다보니 본래 예정된 인터뷰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아니 사실 인터뷰라기보다는 좋은 강연 한편을 듣고 온 기분이다.

이선용 해심원 CEO “다시마차 20년, 새로운 기회 열어줘”(인터뷰)

◆‘생활한복 디자이너’에서 ‘해심원의 CEO’로

해심원의 이선용 대표는 ‘다시마차’를 어머니에 이어 2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 본래 생활한복 디자이너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나, 사업을 본격적으로 맡아달라는 모친의 부탁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사업 반대도 하고 여러 차례 거절도 해보았지만 결국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됐다. 이 대표는 “한 마디로 어머니 사업에 코가 꿰인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기까지는 말 못할 시간들이 존재했다.

언뜻 봐도 디자인과 차 제조 사업은 달라도 너무 달라 보인다. 매니큐어 바르고 꾸미길 좋아하던 여성이 장화와 모자를 갖춰 입고 ‘물 일’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사업 초반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기로 했다.

“경영수업이랄 것도 없었어요. 2개월의 짧은 일본 공장 경험과 어머니가 정리해준 A4용지 한 장 분량의 성분표가 전부였죠. 처음에는 원망도 많이 했어요. 하고 싶은 거 하고, 밤새며 디자인했던 사람을 틀 안에 가져다 놓으니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경험이 없다보니 상처도 잘 받고, 사람 대하는 법을 몰랐죠. 직원들에게 모범이 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굉장했고요. 그래서 주말·밤낮도 없이 싱글침대에 칸막이를 치고 사무실에서 혼자 2년을 살았어요.”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곳은 과거 생활했다던 장소로, 디자이너에서 사업가로 다듬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는 공간인 셈이다. 그래도 디자이너 출신 사업가이므로 상품 디자인을 할 때 유리한 부분은 없었을까? 이 대표는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내 만족에 만드는 건 작품, 대중 생각하면 상품이에요. 사업 경험이 없던 전 한동안 디자인 개념으로 작품을 만들어버렸죠(웃음). 멋있게 한다고 까만 색지에 금장장식으로 포장하니 ‘어디 상갓집 가느냐?’는 이야기도 들었고, 먹기 편하게 채로 썰어주니 ‘그냥 씹어먹고 싶은 데 왜 이렇게 주느냐’ 호통도 들었어요. 지나친 서비스가 도리어 소비자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걸 사업하며 배웠죠. 거기까지 깨닫는 게 참 오래도 걸렸어요”

이선용 해심원 CEO “다시마차 20년, 새로운 기회 열어줘”(인터뷰)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다시마차가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 해심원의 다시마 차·조미료 등의 상품은 철저한 직거래로 유통된다. 대형마켓이나 백화점 등 유통 채널을 넓히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볼 수도 있었을 터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어머니가 사업하셨던 일본의 경우 다시마의 황국이라 할 만큼 상품 종류가 수만 가지예요. 한국의 경우 음식문화 자체가 다르죠. 바닷가에서 늘 보는 것을 왜 이렇게 비싼 돈 주고 사먹어야 하냐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갭을 맞추긴 현실적으로 힘듭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우리 제품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제품입니다. 주 고객층은 군부대, 병원, 관공서 등의 고위층으로 다소 한정적이죠. 하지만 한 번 소문을 듣고 찾아오면 10년 이상 가는 효자고객이 됩니다”라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해심원만의 특수한 유통망에 대해 설명했다.

다시마차는 특유의 깊은 맛 덕에 음주 다음날이나 외국에 장시간 나가야 할 때 특히 유용하다. 국물이 생각날 때, 다시마 몇 조각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면 아침 식사대용으로도 가능하다. 조미료로 제작된 다시마의 경우엔 이유식이나 죽에 뿌려 비벼주면 영양이 높고, 배변을 돕는 효과가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제품이 지역성을 탄다는 것인데, 경상도나 바닷가 등지는 칼칼한 맛의 다시마차를 좋아하고, 서울·경지 지역에선 부드러운 맛을 더 선호한단다.

단, 다시마의 특성상 바닷내음이 올라와 뜨거울 때 마셔야 맛있다. 다시마를 사용해 육수를 내는 미역국, 우동국물 등이 식으면 맛이 덜한 것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천천히 마실 수 있는 상담용 차는 아니다 보니, 주변에서는 커피나 녹차 상품도 해보라고 많이들 권했죠. 하지만 내가 개발 안 하고, 남의 것 가져오면 유통인데. 남의 것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수박 겉핥기죠”

이런 고집 덕택일까. 그간 해심원의 청다시마차와 유사한 제품이 등장해왔지만 금방 사라지기 일쑤였다. 이대표는 “음식이란 건 성분에 의한 맛이 아니라,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무늬는 비슷해도 먹는 맛을 벤치마킹이 안 되죠. 내 것을 고집해왔기에 해심원이 좁은 시장에서 20년을 유지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운영 철학에 대해 밝혔다.

◆20년 시간이 선물해준 신사업 아이템

다시마차에 대한 이야기를 한창 하던 중 이 대표는 뜻밖에 새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외길을 걸어오던 심경에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헌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게 꼭 외따로 떨어진 일도 아니다.

사업을 구상한 바탕엔 2세 경영인이라면 느낄법한 고민이 존재했다. 어머니가 이미 닦아놓은 길이 아닌, 스스로 개척해나갈 일을 하고 싶었던 것.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는 말처럼, 사업 아이템은 뜻밖에도 20년간 함께했던 다시마차 공장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평생 원자력 발전소나 한국전력과 같은 곳을 갈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그런데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닥친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레 신상품을 만들고 있더라고요”

다시마는 표면에 염분이 있는 탓에 기계를 금세 녹슬고 산화하게 만든다. 시중의 윤활유를 가져다 쓰더라도 화학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먹는 것에 닿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써야한다. 가장 큰 문제는 윤활유가 녹뿐만 아니라 기계의 쇠까지 녹인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값비싼 기계를 매번 교체할 수도 없는 일.

이 대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학 전문가와 손잡고 쇠를 부식시키지 않는 윤활유를 개발했다. 녹은 제거하면서 쇠는 보존하도록 했다. 자전거 체인, 자동차 휠, 선박 등에도 사용 가능해 쓰임새가 다양하다. 화장품원료로 쓰이는 라놀린을 고 정제해 제조, 친환경 특허까지 어렵게 받았다는 설명이다.

“세상에 전공하고 다른 일을 해도 전공 버리는 거 아니더라고요. ‘왜 딴 일을 해?’가 아니라 새로운 분야에도 과거 경험이 분명 쓰임새가 있어요. 종목 달라도 제조, 연구, 생산, 디자인 다 비슷하기 때문이죠. 20년 동안 해심원을 운영하면서, 고층부터 지하층까지 참 많은 사람 만났어요. 사람마다 어떻게 대해야 할 지를 배운 셈이죠. 그 전 같으면 막막했을 텐데, 이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자신 있게 말합니다. ‘나 이거 만들었는데 괜찮지 않아요?’라고”

새삼 좁은 저변의 다시마 차 사업을 20년이나 이끈 내공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표는 그러한 칭찬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단순히 사업을 오래 유지했다고 인정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럼 면에서 요즘 이렇게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 생겨서 정말 기뻐요. 돈은 두 번째에요. 신나서 일을 마음껏 펼치니 참 행복합니다”

이 대표가 개발중인 플루이드RX(향후 제품명 변경 예정)는 먼저 한국수력원자력, 수자원원자력, 한전 등 정부기관의 입찰 공모한 뒤 일반 소비자에게도 서서히 선보일 예정이다. 출시시기는 내년 봄으로, 올해 말까지 벤처 인증 및 NEP 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황민교기자 min.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