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소프트웨어 저작권 사냥과 사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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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은 총, 활, 덫 등을 사용해 짐승을 포획하는 행위를 뜻한다. 구석기시대 원시인에게 사냥은 중요한 생존 수단이었다. 짐승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냥 수단은 계속 발달했다. 사냥이 더 이상 필요없는 최근에는 스포츠나 취미로 바뀌었다.

사냥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정보기술(IT) 업계에 가끔 이 용어가 등장한다. 글로벌 대기업이 벌이는 소프트웨어(SW) 저작권 사냥이다. 최근 오라클, SAP 등 거대 외국계 기업이 국내 대기업에 저작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전문기자칼럼]소프트웨어 저작권 사냥과 사냥감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은 좋은 사냥감이다. 외국계 기업이 저작권 문제로 요구하는 추가 금액이 수억에서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뛴다.

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이 10억원을 지불하기 위해 매출 수백억원을 추가로 올려야 한다. 외국계 기업은 쉽게 부르는 금액이지만 기업 입장에선 적은 금액이 아니다.

사냥감이 되지 말아야 한다. 기업과 공공기관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야 한다. 당장 SW 저작권(라이선스) 계약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은 미리 찾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가 피해를 봐선 안 된다. 앞으로 조직 내 어느 누구도 라이선스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 문제가 아니라 기업 차원에서 SW 라이선스 문제를 다뤄야 한다.

불법 사용 문제를 덮기 위해 이면 계약을 체결하거나 조용히 넘어가자는 식의 해결은 문제를 키운다. 오히려 큰 약점이 하나 더 생기는 꼴이다. 외국계 기업이 노리는 부분이다. SW 라이선스 문제를 조직 내 수면 위로 올려서 투명하게 해결해야 한다.

외국계 기업이 친 덫을 조심해야 한다. 계약서를 쉽게 봐선 안 된다. SW 라이선스 구매 때부터 계약서를 꼼꼼하게 봐야 한다. 외국계 기업은 라이선스 계약서에 많은 내용을 담는다. 심지어 특정 기업은 계약서에 링크 주소만 넣고 고지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한다. 링크 주소를 입력해서 해당 사이트로 접속하면 수십 쪽에 이르는 영어 계약 내용이 있다. 사이트는 해마다 업데이트 된다. 해마다 체크하지 않으면 또 저작권 이슈에 걸려든다. 외국계 기업은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이 영어 계약서에 취약하다는 약점을 악용한다.

SW 라이선스가 어렵다고 덮어 둬선 안 된다.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 거다. 내부에 전문가가 없다면 외부 컨설팅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라이선스를 제대로 공부하고 대응해야 한다. IT 환경이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으로 바뀌면서 SW 라이선스 정책도 시시각각 변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는 죄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전문기자칼럼]소프트웨어 저작권 사냥과 사냥감

“너무 화가 나서 고속도로 한 편에 차를 세워 놓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지난해 취재 때 만난 한 취재원은 SW 저작권 분쟁의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 덫에 걸린 사냥감, 먹잇감이었다.

외국계 기업은 유독 한국에서 라이선스 이슈를 많이 문제 삼는다. 한국이 일종의 저작권 사냥 '테스트베드'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국에서 시도해 보고 결과가 좋으면 다른 국가에서도 시도해 보는 식이다.

SW 추가 구매 또는 합의금은 회사 매출까지 영향을 미친다. 현업 부서만으로는 대응이 버겁다. 최고경영자(CEO)가 나서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한국이 계속 저작권 사냥 테스트베드로 남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의지와 노력에 달렸다.

김지선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