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7> 정상회담과 모시한복외교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7> 정상회담과 모시한복외교

외조부는 양복점을 운영했다. 어머니는 양복점주 딸답게 양장을 즐겨 입었다. 명동, 서교동 조그만 양장점이 단골집이었다. 동대문 원단 가게에서 손수 옷감을 끊어 양장점에 공임을 주고 옷을 맞춰 입었다. 기성복이 대량 생산되면서 값도 싸고 멋있는 옷이 넘쳐났지만 어머니는 맞춤 양장을 고집했다. 치수를 정확히 재서 몸에 맞게 입어야 맵시가 나고 편하다는 것이다.

단골양장점 아주머니는 인심이 좋았다. 어머니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원단으로 언니와 내게 짧은 치마나 바지를 만들어 주곤 했다. 학교에 번쩍번쩍 윤이 나는 공단 바지를 입고 다니는 아이는 내가 유일했다. 수십 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생은 '초록색 공단 나팔바지를 입은 아이'로 나를 기억했다. 단골의상실 주인이 병으로 죽고 나서 어머니는 더 이상 맞춤옷을 입지 않았다.

어머니가 찌는 더위에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상견례를 갖던 그날이었다. 7월 말 어머니는 시댁어른과 상견례에 소색 저고리, 연분홍 모시한복을 입었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위였다. 무명 버선을 신고 인견으로 만든 속바지와 갑사 속치마를 입었다. 모시가 시원한 옷감이지만, 그렇게 갖춰 입으면 한여름 찜통이었다. 어머니는 연신 손수건과 부채로 땀을 식혔다. 시어머님이 어머니에게 던진 첫마디는 “아이고 삼복더위에 한복을 입었네예. 우짤꼬”였다.

큰아들 첫 돌잔치에 어머니는 내게 모시한복을 선물했다. 소색 저고리와 푸른색 치마였다. 아들의 첫돌은 8월 말이었다. 늦더위가 여전했다. 더운 날씨에 무슨 한복이냐고 펄쩍 뛰었지만 첫 아들 첫돌에 어미로써 예를 갖추는 것도 의미가 있다며 한사코 한복을 권했다. 자녀 때문에 한복 입을 일이 일생에 세 번 생기는데 첫돌, 상견례, 결혼식이라며.

[박선경의 발칙한 커뮤니케이션]<27> 정상회담과 모시한복외교

문재인 정부 첫 한미 정상회담 내내 김정숙 여사 푸른색 모시한복이 화제였다. 김 여사는 친정어머님에게 물려받은 옷감으로 전통방식인 쪽물을 들였다고 했다.

푸른색 천연염색은 모두 쪽잎으로 물들인다. 발효한 쪽물에 옷감을 몇 번 담갔다 말렸다 반복하느냐에 따라 색감이 달라진다. 연한 쪽빛을 내려면 발효하지 않은 생쪽을 냉수에 담아 색을 낸다. 염색 전문가 친구는 여사의 장옷 쪽빛은 생쪽 만으로 그런 빛깔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며칠간 세계인의 눈과 귀가 한미정상에게 집중됐다. '한복집 딸'의 색 감각은 기대 이상이었다. 푸른색은 성공과 신뢰를 상징한다. 우방 미국과 성공적인 신뢰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김 여사는 쪽빛으로 표현했다.

각 나라 수장이나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회담 자리에 입고 나오는 의상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다. 나라 간 정상 모임은 국익에 관해 철저하게 계산한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 이해관계가 분명한 자리에서 패션은 가장 강력한 비언어커뮤니케이션 역할을 수행한다. 디자인, 색깔은 물론 작은 장신구까지도 함축 기호가 된다.

모시 치마저고리에 장옷까지 걸친 김정숙 여사 등줄기에도 땀이 흘렀을 것이다. 영부인은 예와 국익, 그리고 대한민국 이미지를 한복으로 표현했다. 어떤 이는 장옷의 푸른빛이 한국의 청량한 가을 하늘을 닮았다고 했다. 여사가 입은 쪽빛 모시 한복이 한국과 미국에게 희망을 잉태하는 신의 한수이길 기대한다.

문화칼럼니스트 sarahs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