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자 업계 최대 화두는 이른바 '칩플레이션'이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면서 가격이 치솟았고, 이 현상이 PC와 스마트폰 단가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신형 노트북 출고가를 올렸고, 대만업체 에이서도 다음달 이후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완제품 업체들은 원가 상승으로 출고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판매 위축 우려에도 불구하고 원가 상승을 감당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다.
문제는 그 청구서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으로 향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들이 메모리 가격 상승 부담을 상쇄하기 위해 디스플레이·카메라 모듈·센서 등 다른 부품 단가 인하를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고객사가 공급 단가를 낮추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부품사는 구조적으로 가격 협상력에서 열위에 있기 때문에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고강도 단가 인하 압력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연구개발(R&D) 위축과 품질 저하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결국 전자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이는 PC·스마트폰 제조사의 생존과 직결된다.
공급망은 산업의 혈관이다. 소부장 공급망 구조가 흔들리면 안정적인 전자제품 생산이 불가능하다. 건강하고 강력한 생태계 형성이 중요한 이유다.
고통 전가가 아니라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 촘촘한 공급망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전자 업계는 존속할 수 없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산업 전체가 무너진다. 제조사와 협력사가 메모리 인플레이션 파고를 넘어 함께 생존할 수 있는 동반성장이 절실하다.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