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핫이슈]美 덮친 괴물 폭풍, 왜?

기록적인 '괴물 폭풍'이 미국을 덮쳤다. 허리케인 '하비'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텍사스주 휴스턴은 도로, 주택 등이 잠기면서 '물의 도시'가 됐다. 하비가 덮친 텍사스주는 정유 시설 밀집 지역이어서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클 것으로 우려된다. 정유시설 훼손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 2차 피해도 골칫거리다.

미국 기상청과 언론 전망을 종합하면 하비로 인한 강수량은 역사에 남을 수준이다. 1978년 열대폭풍 '아멜리아'가 텍사스에 뿌린 비의 양은 1220㎜다. 하비로 인한 누적 강수량은 1300㎜를 넘어섰다. 이 지역 강우 기록이 일찌감치 깨졌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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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홍수통제국 소속 기상학자 제프린드너는 “나흘 간 휴스턴 인근에 내린 물의 양은 1조 갤런(약 3조7900억ℓ) 이상으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15일 간 떨어지는 물의 양”이라고 AP에 설명했다. 수몰 면적은 1400㎢다. 이는 시카고와 뉴욕시를 합한 것과 같다.

피해 규모도 '역대급'이다. 전망마다 차이는 있지만 2005년 대륙을 초토화시킨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뛰어넘는 것은 확실시된다. 블룸버그는 하비로 인한 경제 피해가 300억~1000억달러(약 33조8000억~112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향후 12개월 간 최소 1000억달러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카트리나 피해액은 500억~1180억달러 수준이다.

USA투데이는 민간 기상 분석업체 아큐웨더를 인용,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액이 1600억달러(약 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국민총생산(GNP)의 0.8%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큐웨더는 31일(현지 시간) 총 피해 예상 규모를 1900억달러(약 213조원)로 올려잡았다. 사망자, 실종자도 속출하고 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는 45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텍사스 연안 석유화학단지에는 2차 피해가 현실화했다. 비상발전기를 포함한 전기시설 대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환기장치, 오염물 포집시설 등이 멈췄다. 현지 언론 폴리티코는 석유 정제시설에서 900톤 이상 화학 물질이 공기 중에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환경단체는 벤젠, 톨루엔 등 유해 물질이 포함됐다고 우려한다. 침수로 인한 시설 폭발 위험도 잇따르고 있다.

허리케인 등급으로 봐도 하비는 미국 역사에 남을 대참사다. 지난 13년 새 미국을 강타한 가장 강력한 허리캐인이다. 상륙 당시 등급이 4등급이다. 2005년 1200명 목숨을 앗아간 카트리나도 상륙 당시엔 3등급이었다. 허리케인 등급은 총 다섯 단계로, 숫자가 높을수록 위력이 세다. 4등급은 풍속 131~155마일(210~249㎞)로, 주택을 파괴하고 나무를 뿌리째 뽑는 수준이다.

강풍 이후 '물 폭탄'이 더 거셌다. 애초 물을 많이 머금고 있었던 데다, 통상의 허리케인보다 천천히 이동하면서 지상에 뿌리는 비의 양이 많았다. CNN은 하비가 100마일(약 160㎞) 이동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사람의 걸음걸이와 비슷한 속도다. 통상 허리케인은 빠르게 지상을 지나치면서 산발적 피해를 일으킨다. 하비처럼 느리게 이동하면 강풍과 폭우도 더 오래 지속된다.

이번 참사가 '지구의 복수'라는 경고도 나온다. 기후 변화로 인해 열대폭풍이 더 많은 수분을 흡수했고, 결국 물 폭탄을 퍼부었다는 견해다. 실제 하비의 발달, 진행, 상륙에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해역이었던 멕시코만의 수온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구 온난화가 해수면 온도 상승을 불렀고, 이 해수면이 '괴물 폭풍'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실제 8월 말 하비가 휴스턴으로 다가올 때 텍사스 근해 수면 온도는 평균보다 화씨 2.7~7.2도 상승했다. 이상 고온이 열대성 저기압을 위력 높은 허리케인으로 키웠다. 하비는 육지 상륙 직전까지 계속 세력이 커졌고, 텍사스 코앞에서 4등급으로 격상됐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보통 허리케인은 육지에 접근하면서 세력이 약해진다.

케빈 트렌버스 미국대기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폭풍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만 대양의 열 때문에 더 크고 강력하며 오래 지속할 수 있고, 많은 양의 폭우를 동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휴스턴을 강타한 폭우의 최대 30%는 '인간의 기여' 때문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