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한미 FTA 개정협상에 울상 짓는 車업계…“픽업트럭 사실상 수출 불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으로 국내 자동차 업계가 중장기적으로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승용차 관세 부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면했지만 2041년까지 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픽업트럭은 사실상 수출길이 막혔다. 미국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서는 관세 25%를 물거나, 현지에서 생산하는 수밖에 없다. 국내 안전·환경 기준에 상관없이 수입을 허용하는 '쿼터'도 5만대로 늘어나 미국산 수입차가 점차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수출 선적을 대기 중인 국산차
수출 선적을 대기 중인 국산차

26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은 FTA 개정협상에서 화물자동차(픽업트럭) 관세철폐 기간 연장, 자동차 안전·환경 기준 유연성 확대에 합의했다.

기존 협정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까지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완전히 없애기로 했다. 개정 합의에 따라 관세 철폐 기간이 2041년까지로 20년 연장됐다.

미국 자동차 안전기준을 준수한 경우 한국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수입을 허용하는 물량 기준을 제작사별 연간 2만5000대에서 두 배인 5만대로 늘렸다. 차기 연비·배출가시 기준을 설정할 때 연간 4500대 이하 업체에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소규모 제작사'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국산차 업계는 2016년 철폐된 승용차 관세 부활과 미국산 자동차 부품 의무화 등이 개정협정에 채택되지 않으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는 분위기다.

미국은 자동차의 역내 부가가치 기준 상향(기존 62.5%에서 85%로)과 미국산 부품 50% 의무사용, 자동차 부품 원산지 검증을 위한 '트레이싱 리스트(tracing list)' 확대 등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수준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성명을 통해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자동차 분야의 양보가 최대 이슈로 부각돼 많은 우려를 가졌는데, 선방한 정부의 협상 노력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우리 산업 경쟁력 정책과 규제 정책과의 조화를 함께 고려해 우리나라 제작사에 대한 규제도 중장기적 차원에서 탄력적으로 재조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 소형 픽업트럭 콘셉트카 '싼타크루즈(HCD-15)' (제공=현대차)
현대자동차 소형 픽업트럭 콘셉트카 '싼타크루즈(HCD-15)' (제공=현대차)

다만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가 2041년까지 유지되면서 중장기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현대·기아차, 쌍용차 등은 미국 시장에 픽업트럭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시장은 픽업트럭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년 판매 상위권은 미국 빅3(GM·포드·FCA) 픽업트럭이 차지하고 있다. 픽업트럭 미국 시장 규모는 지난해 280만대로 2016년보다 4.8% 증가했다. 픽업트럭 시장은 경기회복과 저유가 등으로 최근 5년(2012~2016년)간 연 평균 6%씩 성장세다.

업계 관계자는 “FTA 개정협상으로 사실상 국내산 픽업트럭 미국 수출길은 막히게 됐다”면서 “관세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미국 현지 생산뿐인데 이 방법 역시 새로운 신규투자가 필요해 업체들이 선뜻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안전기준을 충족하는 차량 수입 쿼터제는 5만대로 늘어나면서 수입차 시장 활성화를 도울 전망이다. 현재 미국 브랜드는 수입차 시장에서 점유율이 7%도 안된다. 향후에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일본, 유럽차의 수입량이 늘어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한·미 FTA 발효 이후 미국산 유럽차 수입 물량이 상당히 늘었다”면서 “정체기에 접어든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 점유율이 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류종은 자동차/항공 전문기자 rje31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