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사피엔스 시대]배달 고수로 가는 지름길? "AI에게 물어보세요"

메쉬코리아 'AI배차' 체험해보니…
AI가 기사 위치·동선·수행능력 판단
일반 배차보다 처리 건수 50% 늘어
심리적 압박감 없이 안전 배달 도와

지난 23일 메쉬코리아 인공지능 배달 주문 배차 시스템을 체험해봤다.
지난 23일 메쉬코리아 인공지능 배달 주문 배차 시스템을 체험해봤다.

최근 연봉 1억원대 배달대행기사가 등장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물론 누구나 가능한 수입은 아니다. 하루에 160건 이상 소화해야 이 정도 벌이가 가능하다. 초보자는 한 시간에 배달 두 건 처리하기도 버겁다. 고수입 기사는 필수로 습득하고 있는 '합배송' 스킬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고수는 1회 이동에 최대 5개까지 합배송으로 처리한다.

합배송은 '전투콜'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빠르고 정확한 선택을 구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순발력도 중요하지만 수행 중인 배달경로와 픽업지 및 도착지를 머릿속에 떠올린 후 경로 안에 있는 콜을 잡아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노하우 연구도 활발하다. 일명 '배달대행 천기누설' '전투콜 부채꼴 이론'이라는 이름을 단 영상들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끈다.

메쉬코리아는 이 합배송을 사람 대신 인공지능(AI)이 판단하게 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1년여 기간 동안 일부 지역에서 시범 테스트를 거쳤다. 이달 말 전국 단위로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지난 23일 메쉬코리아 AI배차는 일반 배차와 어떻게 다른지 직접 배달을 수행해 봤다.

초보 배달기사가 가장 어려운 점은 지리 숙지다. 시간 내에 상점과 배달지까지 복잡한 이동에 집중하기에도 벅차다. 배달 한 건을 완전히 처리하고 나서야 매 순간 새롭게 올라오는 주문 콜을 볼 여유가 생긴다. 이 방식으로는 최저임금 이상 수입 얻기도 쉽지 않다. 많은 배달대행 플랫폼들이 초보자에게 프로모션 수익을 추가 제공하는 이유다.

[AI 사피엔스 시대]배달 고수로 가는 지름길? "AI에게 물어보세요"

메쉬코리아 AI배차는 기사 위치, 수행 중인 배달의 이동 동선, 이동에 걸리는 시간, 기사 평균 배달 수행 능력을 모두 고려해 다음 배달 최적값을 구한다. AI배차가 '온(On)' 상태에 있는 동안 기사는 다음 콜을 직접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AI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절로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실제로 일반 배차 대비 시간당 처리 가능한 배달건수가 50% 이상 늘었다. 초보자일수록 효과가 크다.

자동 배차는 신규 배달기사 업무 수행량과 수입을 일정 수준까지 보장해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많은 신입 기사가 업무 난도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입 때문에 장기근속을 포기한다. 배달 플랫폼 입장에서도 이탈은 매우 아쉽다. 배달 가능한 상품군은 계속 넓어지는데 기사 수급은 갈수록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김명환 메쉬코리아 데이터사이언스실장은 “전투콜 시스템에서 고수입 배달 기사는 순발력과 동체 시력이 좋은 기사에 집중된 경향이 있다”면서 “말하자면 AI배차는 '스킬의 민주화', 친절하고 서비스 능력이 뛰어난 기사도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도구”라고 설명했다.

AI배차는 안전한 배달을 도와주는 데 가치가 더 높다. 이륜차 운전 중 스마트폰 조작은 불법이지만 많은 기사는 여러 대 스마트폰을 이륜차에 부착하고 조작해 콜을 잡는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오토바이 사고 건수는 연평균 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빨리 콜을 잡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사고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AI 배차를 신뢰할 수 없다는 기사도 있다. 처리 난이도 대비 단가가 낮은 '똥콜'을 AI가 강제 배정할 수 있다는 의심을 제기한다. AI 도움 없이 고수익을 창출하는 기사도 달갑지 않다. 그러나 시범 테스트 지역에서 발생한 전체 주문 중 80% 이상이 AI 자동배차로 처리되고 있다. 기사들은 자유롭게 AI 옵션을 끌 수 있지만 대부분은 전투콜 시스템 대비 효율성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김명환 데이터사이언스실장은 “어떤 기사는 일자리 문제, AI 윤리 등과 연결시켜 막연하게 AI 도입을 싫어하기도 한다.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인식 전환”이라면서 “사람을 위한 AI라는 측면에서, 올해는 생산성보다는 배달기사 안전에 더 초점을 두고 개발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