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21대 국회 반쪽 출발, 멀어진 협치

177석 거대여당, 개원 상징성 부여
통합 "일방적..나쁜 선례 남겼다"
민주, 18개 상임위 독식 땐 큰 부담
법사위-예결위 사수 통합, 자충수 우려

[이슈분석]21대 국회 반쪽 출발, 멀어진 협치

21대 국회 여야 협치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 5일 반쪽 국회 개원에 이어 7일 진행된 원 구성 협상에서도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입장차만 확인했다. 8일 원 구성 법정시한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가진 사실상, 최종 협상의 의미였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돌아섰다. 임기 시작부터 협치를 외치던 양당이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등을 돌린 모습이다.

◇빛바랜 '협치' 일성…책임 떠넘기는 여야

박병석 신임 국회의장의 첫 일성은 '협치'였다. 취임사에서 자신을 '의회주의자'로 소개한 박 의장은 “소통을 으뜸으로 삼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한다”고 했다. 21대 국회 전반기 운영에 대해선 “소통은 공감을 낳고 공감대를 넓히면 타협에 이를 수 있다”며 소통을 권유했다.

바람과 달리 21대 국회는 갈등으로 시작, 과거 국회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 얻은 것은 처음으로 법정시한에 맞춰 국회가 개원했다는 상징성뿐이다. 민주당은 그 상징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지만, 통합당은 개원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법정시한에 맞췄다는 상징성보다는 야당과의 합의 없는 여당 독주의 나쁜 선례를 남긴 것으로 봤다.

반쪽 개원의 갈등은 원 구성 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 의장은 8일 정오까지 각 당에 상임위원회 선임 요청안을 제출해 달라고 했지만, 최종 협상이 무산되면서 상임위 요청안 제출 여부도 요원하다. 8일 오전까지 여야 간 비공식 협상을 이어갈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재로선 극적 타결을 기대해야 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거둔 177석 수적 우위의 힘을 계속 과시하고 있다. 국회 개원에 이어 원 구성도 법정시한에 맞춰 8일에 마무리한다는 목표다. 계획대로 원 구성을 완료하고 3차 추가경정예산 심사 등 곧바로 의사일정에 들어간다는 구상이다. 8일까지 최대한 통합당과 원 구성 협상을 이어가고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한다는 계획이다. 18개 상임위원장 자리 모두를 가져가는 '독점카드'를 고수하는 모양새다.

통합당은 민주당의 국회 단독 개원에 이어 원 구성 협상까지 무산되면서 21대 국회 정상 운영이 힘들 것으로 봤다. 지금처럼 민주당이 수적 우위로 압박하는 행보를 계속할 경우 협상 자체가 힘들다는 판단이다.

통합당은 상임위 배분 협상에서 11 대 7(통합당) 비율을 주장하고 있다. 또 자당 몫 7개 상임위에 법제사법위원회와 예산결산위원회가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포기하고 다른 상임위를 더 가져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은 지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다. 민주당은 준법 국회를 위해 의장당 선출 후 상임위 구성 협상을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통합당에 책임을 전가했다. 통합당은 여야 간 합의 없이 의사일정을 강행하는 민주당에 책임을 묻고 있다. 상임위 구성 협상이 난항을 겪은 것도 상대방이 무리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8일 원 구성 법정시한…여야, '명분'과 '실리' 고민

국회 원 구성 과정에서 최대 쟁점은 교섭단체의 상임위원장직 배분이다. 이에 대한 명시적 규정은 없다. 다만 원내교섭단체의 의석비율과 비례해 배분되어 온 관행이 있다. 역대 국회를 돌아보면 전반기 원 구성 협상이 후반기보다 더 치열하게 진행됐다. 대체로 후반기 상임위원장 배분이 전반기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년 단위로 전반기와 후반기가 나눠지지만 이번 협상이 사실상 앞으로 4년을 좌우하는 셈이다.

가장 큰 논란은 민주당의 18개 상임위 독식이다. 이론적으로는 177석의 거대여당이 된 만큼 표결로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가져가는 것이 가능하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이례적이며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특정교섭단체가 모든 상임위를 가져간 적은 없었다.

때문에 민주당 내부에서도 18석 독점은 '협상 카드'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개원 이전 협상은 상호 입장을 확인하는 정도였고 이제부터 진짜 협상 시작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이 대화 채널을 유지하고 있지만 8일 상황은 유동적이다. 상임위 배분과 마찬가지로 원 구성 협상이 법정시한을 맞춘 것은 13대 국회 이후 한 차례도 없다. 원 구성 협상이 완료되는 데까지 평균 41.4일이 걸렸고, 14대 국회 전반기에는 125일이 소요되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이 원 구성을 포함해 앞으로 21대 국회 협상에서 우위에 있다는 인식은 분명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실상 협상을 위한 조건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18개 상임위 독점을 언급한 것도 협상에서 양당의 위치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수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은 통합당은 고민이 깊다. 우선 법사위와 예결위를 확보한다는 원칙은 세웠지만 과연 실익이 있을지 의견이 갈린다. 통합당이 법사위를 확보하려는 이유는 정부 여당 견제를 위해서다. 법사위는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통해 각 상임위의 법안을 관리할 수 있는 만큼 야당 입장에서는 반드시 가져가야 할 상임위로 여겨진다.

문제는 법사위에서 다른 상임위 법안이 지연되거나 폐기되는 일이 많아지면서 체계·자구심사 권한을 축소하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통합당이 법사위를 확보해도 체계·자구심사 권한이 사라지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예결위도 마찬가지다. 행정부의 일방통행·퍼주기식 예산을 막기 위해 야당 몫을 주장했지만 예산처리 지연 모습을 보일 경우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19로 3차 추경안이 올라와 있는 상황에서 예결위를 여당 견제의 수단으로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지난 총선에서 패하며 비대위를 통해 새로운 당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 통합당 입장에선 또다시 '보이콧 정당'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상황이다.

통합당은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다. 향후 21대 국회 주요 이슈 관련 협상에서 민주당의 페이스에 휘말리기 보다는 실익에 주안점을 두고 당원들과 충분히 논의하며 여론에 맞춰간다는 전략이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