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산학연관, '소부장 자립' 총력…日 넘어 글로벌 시장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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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작년 7월 우리나라를 상대로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에 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공급망을 압박, 한국 산업계에 직접 타격을 가하기 위한 시도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관련 판결에 대한 보복이다.

우리 산·학·연관은 일본 수출규제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글로벌가치사슬(GVC)에 대응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기업들은 핵심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공급망 다변화 대응에 적극 나섰다. 정부는 소부장 자립을 넘어 우리나라를 글로벌 제조 클러스터로 도약시키기 위한 범정부 차원 산업 육성 계획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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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없다”…소부장 자립화 가속

우리 제조기업들은 일본 수출규제 이후 공급망 안정화에 주력했다. 우리나라와 수입국 관계에 따라 언제라도 공급망이 붕괴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국내 생산거점을 늘리는 것은 물론 자체 기술로 주요 품목을 국산화하는데 속도를 내고 있다.

SK머티리얼즈는 최근 해외 의존도 100%였던 초고순도(99.999%) 불화수소(HF) 가스 양산에 돌입했다. 불화수소는 일본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다.

초고순도 불화수소 가스는 반도체 제조에 사용된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대표적인 고부가 제품이다. SK머티리얼즈는 경북 영주에 15t 규모 생산시설을 구축, 램프업(생산량 증대) 채비를 갖췄다. 오는 2023년까지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또 생산량 세계 1위 육불화텅스텐(WF6), 세계 2위 모노실린(SiH4)을 비롯해 디클로로실린(SiH2Cl2), 디실린(Si2H6) 등 특수가스 분야에서 경쟁력 강화를 지속 추진한다.

SK머티리얼즈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정보기술(IT)이 발전하고, 중국 등 신흥시장 기업들이 성장하면서 글로벌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면서 “지속적 공정 혁신으로 품질·원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차세대 신규 제품 연구개발(R&D)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국내 중소기업 엘티씨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핵심 소재 '격벽재료'(PDL) 국산화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레드(R)·그린(G)·블루(B) 픽셀을 분리하는데 사용되는 PDL은 OLED 패널 핵심 소재다. 기술 장벽이 높아 그동안 일본 도레이가 시장을 주도했다.

중견·중소기업들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자동차, 기계·금속, 전기·전자, 기초화학 등 이른바 소부장 6대 분야에서 핵심 기술 국산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반도체 화학기상증착(CVD) 전문업체 원익IPS는 최근 소재부품 기술개발 R&D를 통해 신규 국산화 장비 확보에 나섰다. 일본과 미국 의존도가 높은 미세공정용 CVD 기술 자립화를 노린다. 국내 웨이퍼 반송 장치 전문업체 라온테크, 히터 기업 미코 등과 핵심 부품 국산화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경원산업이 눈에 띈다. 과거 일본과 독일 수입에 의존한 자동차 노크센서용 압전세라믹 국산화에 성공한 업체다. 현재 세계 시장 60% 점유한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외 자동차 부품사와 공급망을 구축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라믹 소재 전문기업 쎄노텍은 과거 일본에서 전량 수입한 '50마이크로미터(㎛) 세라믹비드'를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원료물질을 나노 단위로 분쇄·분산시킬 때 사용하는 소재다. 현재 일본 수출규제에 따라 대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외에도 엔캠은 이차전지 4대 소재 중 하나인 전해액 전문업체로서 국산화에 성공했다. 엘티소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OLED 재료, 이엔에프테크놀로지는 포토레지스트용 소재를 각각 우리 산업에 공급하며 소부장 자립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

◇'소부장 2.0', 韓을 첨단산업 생산기지로

우리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이후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한편 신속한 대응 체계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다. '소부장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 특별법)'으로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2조1000억원 규모 특별회계도 신설했다.

지난 7월에는 '소부장 2.0 전략'을 발표했다. 일본 수출규제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중장기 계획을 담았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응하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를 글로벌 첨단산업의 생산기지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집대성했다.

소부장 2.0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정한 핵심 100개 품목 범위를 전 세계 대상 338+α로 확대했다. 바이오, 환경·에너지, 로봇 등 신사업에서 신규 발굴해 지속 늘릴 계획이다.

100대 소부장 핵심전략기술과 빅3 산업 등 차세대 선도 기술개발을 위한 R&D 투자도 확대한다. 오는 2022년까지 5조원 이상을 집중 투입하고, 바이오와 시스템반도체, 미래차에 내년까지 2조원 규모 투자를 추가 집행할 방침이다.

'소부장 특화단지'도 조성한다. R&D 우대 등 인센티브, 규제특례, 공동 인프라 구축 등 패키지 지원에 나선다. 기업들이 개발한 다양한 첨단기술과 제품에 대한 투자를 수용할 수 있는 '첨단투자지구'도 지정한다. 세계 각국에서 첨단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을 감안해 가용 가능한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리쇼어링(본국 회귀) 활성화에도 팔을 걷는다. 해외에 생산거점을 구축한 우리 기업들을 국내로 끌어들여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우리 산업계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촉매 역할을 기대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올해 대비 21% 증가한 1조5585억원을 내년 소부장 예산으로 편성했다. 소부장 2.0 등 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에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R&D는 물론 현장 기술전문인력 양성, 해외 기술협력에 예산 지원을 강화한다. 정부 전체 소부장 예산은 올해 2조725억원에서 내년 2조5611억원으로 5000억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