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났습니다]박남규 국과수 원장 "과학수사는 데이터와의 싸움...디지털화 이끌겠다"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디지털화가 일상이 될수록 범죄 수법도 다양해지고 디지털 증거물의 중요성도 커집니다. 감정기법에 있어서도 전면적인 디지털화로 혁신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모든 부서에서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생산하고 관리하며 디지털을 통한 감정기법을 개발하는 환경을 정착시키려 합니다.”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은 급변하는 범죄와 사고 양상에 대응해 감정 업무의 디지털화를 주요 목표로 잡았다. 퇴임하면 없어질 업무가 아니라 누가 원장이 되든지 필요하고 직원들과 합의된 '미래지향적인 업무'를 하고 싶다는 소신이다.

축적된 데이터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할 수 있도록 모든 업무를 데이터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법과학 영역에 적용하기 위해 조직과 시스템도 혁신하고 있다. 이를 지원하는 디지털 기술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30년 동안 국과수에 몸담고 2019년 11월부터 원장으로 조직을 이끌며 우리 사회에 미제사건이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미래 발전을 위한 업무 혁신에 매진하고 있는 박 원장을 만나 앞으로 주요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이호준 ICT융합부장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오른쪽)과 이호준 전자신문 ICT융합부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일반적으로 국과수하면 강력사건을 떠올리지만 '과학수사'의 영역은 생각보다 넓고 일상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것 같다. 국과수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국과수는 일선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필요한 증거물에 대한 검사와 국가·지자체에서 요청하는 조사를 의뢰받아 과학적 감정을 제공하는 업무를 기본으로 한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과 독극물 검사부터 약물·알콜·마약 복용여부, DNA를 이용한 신원이나 범인 확인, 안전·교통사고 등의 해석, 컴퓨터 범죄 분석, IT 관련 증거분석, 문서 심리 감정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

과학수사에서 파생되는 기술을 이용한 사회적 가치 실현에도 적극 참여한다. 대표적인 것이 금감원과 협업하는 보이스피싱 분석이다. 범인 목소리가 담긴 데이터가 한 해에도 수천건이 녹음돼 분석이 요청되고 있다. 국과수에서 범죄자별로 분류해 용의자를 특정하거나 여죄 분석을 위해 대용량 음성 빅데이터를 분석한다. 또 수표·지폐 위변조 감지 기술을 바탕으로 조폐공사 등과 협력한다.

-범죄 수법이 다양해지고 정교해지면서 과학수사의 중요성도 점차 커진다. 과학수사 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과학수사 기술이 범죄를 항상 앞서갈 순 없기 때문에 연구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신종 마약이다. 법으로 규정되지 않은 것을 교묘하게 비껴나가 마약을 이용하고 검출하기도 어려워진다. 최근 과학수사는 데이터와의 싸움이다. 기소 단계나 법정에서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실험 데이터가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첨단 장비와 이를 활용하는 최신 기법 확보, 결과에 대한 정확한 해석 능력이 있는 전문인력의 운용이 필수다.

현대 과학수사는 장비와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장비의 첨단화와 현대화, 노후화율 최소화 등이 감정 인프라 관리의 요체다. 매년 100억원 예산을 첨단 장비 도입과 노후화 교체에 투자하고 있다. 또 연간 6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자체 감정기법 연구를 병행한다.

감정인력 역량 강화는 끝이 없다. 취임하자마자 '법과학교육센터'를 설립해서 신규 직원부터 중견 감정인, 보직자에 이르기까지 과정별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사회 변화에 맞춰 디지털, AI, 사물인터넷(IoT) 대응 등 교육에 집중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 의사 자원을 확보하기 어려워 올해는 관련 부처와 전문인력 양성을 전략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국과수에 몸담은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그동안 국과수에서 어떤 업무를 해왔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1991년 6월 24일 첫 직장으로 국과수에 입소해 올해 6월이 되면 만 30년이 된다. 주로 사건 현장을 따라 화재와 안전사고, 범죄 흔적 등에 대한 현장과 증거물 감정을 전문적으로 해왔다. 사건의 경중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존재하겠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가장 불행하고 억울한 사건일 수 있기 때문에 중요도는 똑같다고 본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은 인명 피해가 큰 안타까운 사고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참사(192명 사망), 2008년 이천냉동창고 화재(40명 사망), 2017년 제천스포츠센터화재(29명 사망) 등은 모두 현장 감정을 지휘했던 사건이다. 사고 원인을 밝혔을 때 예방이나 대피할 수 있었음에도 인적 실수가 많았던 사고는 국민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잘 잊혀지지 않는다.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2019년 제4대 원장 취임 이후 중요하게 추진하는 핵심 업무와 정책은 무엇인가.

▲'고품질 감정'으로 우리에게 해답을 기대하는 수사기관 등 고객에게 '적극적으로 서비스'하는 것이다. 신속성을 확보하면서도 증거 능력을 잃지 않도록 감정 품질을 높이는데 신경쓰고 있다. 특히 DNA 감정은 초동수사와 관련해 정확도 못지않게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하다. 시급성이 인정되는 사건은 기존 3~4일 걸리던 DNA 분석 결과를 실험 당일에 내고 현장 수사관에게 구두 통보하는 식으로 지원하고 있다.

독립된 감정 업무가 주가 되는 직장이다보니 직원의 사기가 곧 감정 품질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등 직장문화 개선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집에서도 감정서를 올릴 수 있도록 감정시스템을 전면 업그레이드 하려고 한다. 누가 감정하고 현재 진행 상황은 어떤지, 증거물 정도관리를 투명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제 규격에 맞추는 인증 사업이나 동료 간 감정서를 봐주는 피어리뷰 시스템, 크로스 체크 시스템, 교육 등 제도 보완도 노력하고 있다.

-사회 발전 양성에 따라 과학수사 중에서도 점차 중요해지는 분야는 무엇인가.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범죄자는 자신의 행위가 발각되지 않도록 숨거나 행위의 증거가 될 만한 물건을 은폐 또는 소멸시키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그 대상물이 대부분 전자화된 디지털 기기다 보니 디지털 정보 획득과 소멸된 자료를 복구하는 기술도 고도화하고 있다. 스마트폰부터 웨어러블, 블랙박스 등 디지털 증거물의 종류도 많고 복잡해진다.

과거에는 교통사고가 나면 역학 법칙에 따라 중앙선을 누가 침범했는지, 큰 차와 작은 차가 얼마나 벌어질지 같은 물리적인 분석을 했지만 이제는 CCTV와 블랙박스에 다 녹화가 된다. 전자기기의 복구, 원상태 회복, 추출, 재구성, 상태를 양호하게 하는 선명화 작업 등이 훨씬 더 중요한 수사 기술이 됐다.

또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자료를 임의로 분석하거나 입출력하면 증거 능력이 무효가 된다. 디지털 증거물이 진짜인지, 입수 당시 상태 그대로 조작되지는 않았는지 객관적으로 인증하는 원본 확인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디지털 증거물 인증사업을 하고 있다.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김민수기자 mskim@etnews.com

-새로운 감정기법 개발도 지속 이뤄지는 것 같다. 과학수사에 필요한 장비와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하기도 하나.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 함께 쓰는 가스크로마토그래피(GC)나 현미경, 엑스레이, 컴퓨터단층촬영(CT) 등 분석·촬영기기 등은 세계 유명 회사의 첨단 제품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지만 거짓말탐지기나 지폐, 유가증권, 여권 등 보안 위조 식별기술, CCTV 추적 기술 등은 국과수가 원천기술과 상업적 기능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스스로 개발해 사용하기도 한다.

억대 가격의 식별기로만 가능했던 위조화폐 감별 기술을 스마트폰에 탑재해 수사관들이 현장에서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행정안전부가 작년부터 시행한 주민등록증 지문 복제 방지 기술 또한 우리 연구진의 과학수사기법 기술이 적용된 사례다. 다중 속에서 특정인을 찾아내는 얼굴인식 기술도 뛰어나 인천공항에 적용했다. 거짓말 탐지기술은 사람의 여러 가지 반응을 전자 신호로 변환해 데이터를 얻는 기술로 한국인에 적합한 심리 검사로 탁월한 결과를 내도록 고안해 특허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 기존 혈중 알코올 농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음주 범죄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음수대사체를 이용한 신감정기법을 개발해 지난해 행안부 '책임운영기관 서비스혁신 공유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과학수사에도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 해외 협력 사례와 성과를 소개해달라.

▲우리나라의 법과학 역량은 선진국 수준이다. 이미 아시아 지역 스리랑카와 중미 엘살바도르, 온두라스에 CCTV 관제 시스템과 디지털 포렌식 장치 및 기술 이전에 참여했고 인도네시아, 몽골, 말레이시아, 베트남, 과테말라 등과도 진행 중이다. 첨단 장비와 인프라 구축은 KOICA 주도로 경찰청 등과 협력하고 있다. 핵심 기술과 운영은 우리 연구진이 현지에 방문해 교육을 시키고 때로는 수혜국 인력이 우리나라를 방문해 국과수에서 교육을 받고 가기도 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일부 지연은 있지만 올해는 비대면 방식으로 교육 등을 진행하려고 한다.

-미래의 과학수사는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나.

▲미래에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활용이 일상화, 범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일 모두가 쓰는 시스템이라면 범죄와 관련된 증거가 존재할 것이다. 여기에서 특정인의 과거 행적이나 행동을 어떻게 잡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 과학수사에 대한 대비라고 할 수 있다.

또 현재 감정서 쓰는 패턴, 장비를 활용하는 기술을 어떻게 하면 빅데이터나 AI를 이용해 간편화하고 정밀화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데이터는 하루아침에 축적되지 않는다. '페이퍼리스' 환경으로 모든 업무를 데이터화시켜서 향후 AI를 접목할 수 있도록 기술 기반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대리기사 급발진 의심 전기자동차 사건이 접수돼 검사 중이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다. 과거 자동차 사고에서 살펴야 할 것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기존 내연기관에서 화석연료의 연소에 의한 엔진이 전기에너지로 바뀌고 많은 기계적 통제 시스템이 전기·전자 제어 계통으로 변하고 있다. 이에 대비해 배터리 생산, 유통, 운전, 관리 과정의 문제점이나 자체 자동 운전 또는 자율주행 등에 사용되는 제어 기반과 센서, 신호, 기록되는 데이터 등의 검사는 수년 전부터 연구를 통해 대비해 왔으며 앞으로도 감정 역량을 쌓아 나가야 할 분야다.

[데스크가 만났습니다]박남규 국과수 원장 "과학수사는 데이터와의 싸움...디지털화 이끌겠다"

박남규 국과수 원장은...

○…충남 공주고등학교를 나와 경희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성균관대에서 표면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소해 1994년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 같은 해 종로 통신구 화재사고 등을 담당하며 화재·안전에 대한 법과학 전문가로 활동했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2009년 부산사격장화재, 2014년 경주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2017년 제천스포츠센터 화재 등 사회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사고에서 항상 국과수를 대표해 현장에 있었다.

2006년 물리분석과장, 2010년 부산과학수사연구소장, 2011년 법과학부장, 2013년 법공학부장 등 요직과 2013년 국과수 혁신도시 이전추진단장, 2015년 국과수 60주년 기념사업단장 등을 역임해 과학수사 분야뿐만 아니라 조직관리나 행정경험도 풍부하다. 2019년 11월 원장에 취임했다.

2014년에는 매년 과학수사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인정해 주는 '대한민국과학수사대상'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의 과학수사를 대표하는 전문 학술단체인 (사)한국법과학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정리=정현정기자 iam@etnews.com

사진=김민수 기자 m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