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K커머스'의 저력…규제 태클 멈춰야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박준호 벤처유통부 기자

지난해 쿠팡에 합류한 투안 팜 최고기술책임자와의 인터뷰에서 “쿠팡이 아마존보다 e커머스를 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인사치레 정도로 생각했다. 그는 쿠팡의 로켓배송이 미국에서도 본 적 없는 혁신이라며 놀라워했지만 한국에서 새벽 문 앞에 놓인 택배는 이젠 익숙해진 일상이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처음 마주한 쿠팡의 당일배송과 새벽배송 시스템에 열광했고, 미국 유력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아마존보다 낫다”고 호평했다. 이 덕분에 쿠팡은 기대 이상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뉴욕 증시에 당당히 입성했다.

국내에서 성장한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은 한국 유통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쿠팡의 걸음은 e커머스 혁신의 발자취가 됐고, '우물 안 개구리'로 치부되던 한국의 커머스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뉴욕 월가 한복판에 걸린 쿠팡 현수막과 오프닝벨 행사를 목도한 국내 유통 기업인들은 “심리적 충격도 받았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말했다.

이번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은 국내 유통업의 저력을 보여 준다. 미국 투자자들이 쿠팡에 거액을 베팅한 건 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한국 온라인 시장의 성장성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e커머스 시장이자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주도권을 잡지 못한 유일한 시장이다. 오프라인 역시 월마트와 까르푸도 롯데, 신세계에 밀려 쫓기듯 한국을 떠났다.

이처럼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커머스를 위협하는 유일한 변수는 정부의 반기업적 규제다. 쿠팡은 제출한 증권신고서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을 '한국만의 특수한 위험'이라고 명시했다. 우후죽순 발의되는 플랫폼 제재 법안은 이제 막 세계 시장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국내 e커머스 산업을 다시 위축시킨다.

쿠팡의 혁신도 규제에서 비켜 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6년 직매입 기반 로켓배송이 불법 택배 논란에 휘말렸을 때 정부의 소형 화물차에 대한 과감한 증차 규제 폐지가 없었다면 쿠팡은 '분란만 일으킨 스타트업'이라는 꼬리표만 남긴 채 잊혀 갔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표심에 치우친 규제보다 K-커머스가 세계로 나갈 힘을 길러 주는 게 급선무다. 외자를 유치해 국내에서 투자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한국 유통기업이 만들어 나아갈 '사업보국'이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