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탄소중립 시대다. 기업의 최대 화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됐고,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전기차 이용이 대중에 성큼 다가왔다.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제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기술개발 경쟁에 돌입했으며, 우리나라에는 탄소중립을 선도하기 위한 혁신기술 개발을 추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준 에너지다소비 산업을 슬기롭게 저탄소로 전환해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경제와 사회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는 시점이다. 전자신문은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과 이용훈 UNIST 총장의 특별대담을 통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과감한 혁신방안과 에너지와 과학기술 분야의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용훈 총장은 “전 세계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탄소중립 기술혁신의 장에서 승리하는 자가 앞으로의 변화를 주도할 것”이라며 말 문을 열었다. 그는 “탄소중립 실현 여부에 과학기술과 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고,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라며 “과학기술 혁신 방향은 탄소중립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김창섭 이사장은 “기후변화 때문에 인류 문명이 존속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탄소중립의 중요성이 커지기 시작했고, EU와 미국 등 탄소중립 실현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거나 연관산업 기술개발을 앞서고 있는 국가는 좀 더 공격적으로 체제를 바꾸려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이사장은 “에너지다소비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는 탄소중립 실현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탄소중립은 인류 대다수가 컨센서스를 이룬 가치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힘들다고 나 홀로 외면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이 글로벌 신패러다임으로 대두됨에 따라 세계 에너지 시장이 청정에너지 중심으로 개편되고 있고, 탄소중립을 경쟁력 확보와 지속가능 성장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을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얼마나 능동적으로 대응하는지에 따라 우리 경제와 사회의 미래가 좌우될 것이며,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실현 가능하다는 것이 김 이사장의 의견이다.
이 총장은 “에너지 산업은 탄소중립을 향한 중대한 변화 앞에 서 있고, 과학기술은 그 변화를 위한 새로운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항상 그래왔듯이 에너지와 과학기술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화석연료의 효율적인 채굴·수송·발전·송전 등을 위해 수많은 첨단 과학기술이 동원된 것처럼 탄소중립 실현을 풀 열쇠도 과학기술에 있다는 얘기다.
이 총장은 “탄소중립 실현의 첫걸음은 '탄소중립을 잘 아는 엔지니어'를 육성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지금까지의 생산성과 효율성 향상 주도의 과학기술이 아닌, 지속가능한 과학기술을 수행할 새로운 유형의 엔지니어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는 “아직 어느 대학에서도 탄소중립 관련 교과목을 개설한 사례가 없는데, UNIST는 탄소중립교육 표준모델을 구축하고자 한다”라며 “'탄소경제 개론' '신기후체제 이해' 등 교과목을 개설하고 각 전공분야에서 탄소중립 관련 교과목을 만들어 탄소중립을 선도할 인재양성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인력 양성 필요성에 이어 탄소중립 실현 핵심 이행수단인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김 이사장은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게 필요하다”라며 “상당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한 노력과 보급 확대를 병행해 탄소중립 실현과 새로운 먹거리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노력도 필요하지만 국내 연관산업과 기술발전 속도가 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외산에 종속되는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이와 함께 '원천기술' 개발 역시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그는 “근본적인 원천기술을 확보해야 중국·유럽 등과 경쟁이 가능하다”라며 “원천기술 개발과 산업 육성을 바탕으로 보급 확대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특히 “시장에서 원하는 기술을 적기에 개발할 수 있도록 속도감 있는 투자가 필요한 곳을 찾아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례로 든 것은 '그린수소' 기술개발 필요성이다.
이 총장은 “한 시장조사 기관에서 탄소세가 현재 약 톤당 2달러 수준이지만, 2030년에는 40~50달러로 수 십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라며 “탄소중립이 2050년 목표로 진행된다고 앞으로 30년 동안 느긋하게 가겠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공정 등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는 탄소세가 비싸지는 2030년, 불과 10년 이내에 경제성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그린수소' 또는 부생수소에서 탄소를 제거한 '블루수소' 생산기술을 빠르면 5년, 늦어도 10년 이내에 개발해 시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내야한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최근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과감한 투자를 집행해 백신 헤게모니를 손에 쥔 것처럼, 탄소중립 기술개발도 시장에서 가장 필요한 시점에 공급할 수 있도록 집중 투자해야 글로벌 시장을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김 이사장은 “우리의 강점인 제조기술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례로 “울산에 부유식 해상풍력 제조 허브를 만들어 경쟁력 있는 기업이 모인 제조단지를 구축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설비를 바로 동해에 설치해 레퍼런스 확보와 기술 보완을 진행해 해외로 수출하는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이어 “탄소중립 실현으로 가는 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가장 열악한 우리나라는 철강·화학·자동차·조선 등 에너지소비가 많은 기존산업 붕괴는 유발하지 않으면서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슬기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 시급한 것으로 정치·정책적 일관성을 꼽았다.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은 여·야 모두의 지향점이므로, 탄소중립에 대한 부분에 있어선 서로 협력하고 긴 시간이 필요한 원천기술 확보 노력은 정치적 이해를 떠나 지속 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 총장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비용과 기술 등에 대한 정확한 인식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두고 단순 계산해보면 약 600조원에서 수천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산과 타임라인을 제시하고, 꼭 필요한 기술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청사진도 그려 불확실성을 최소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탄소중립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필요한지, 어떤 기술을 언제 개발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이행 시나리오를 만들어 국민과 산업계에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좀 더 수월하게 이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 이사장은 끝으로 “항상 위기속에서도 '폭풍성장'을 해왔던 우리 경제가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도전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은 주력산업이 무너져 국가 산업경쟁력이 하락할 수도 있는 위기임이 분명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과거 100억달러 수출을 처음 달성했던 것처럼 국민 모두가 혼연일체로 노력한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국민들이 일상에서 탄소중립이 갖는 기술적, 과학적 지식을 많이 쌓아가면서 우리 산업 인프라를 변화·혁신하는데 동참하고 같이 고민한다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 파고를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용훈 UNIST 총장은
1955년생인 이 총장은 서울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 조교수를 거쳐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KAIST에서 신기술창업지원단장, 정보과학기술대학장, 교학부총장, 성남-KAIST 차세대ICT연구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 이사로 지내다 2019년 UNIST 총장으로 부임했다. 같은해부터 한림공학한림원 부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2020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직도 겸임하고 있다.
◇김창섭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1962년생인 김 이사장은 서울대학교에서 전기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또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도 수료했다. 1992년 에너지관리공단 에너지기술센터에 입사해 기후변화대책반 팀장을 지냈다. 이후 한국산업기술대 전기과 교수,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를 거쳐 2018년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했다.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총괄기획분과 분과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 사진=이동근기자 fot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