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는 시력이 아주 좋아 별명이 인간천문대였다. 브라헤의 취미는 매일 별자리 관측이었다. 단순히 별을 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별의 움직임을 꼼꼼히 적었다. 그 기록은 제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에게 넘어갔다. 케플러는 그 데이터를 분석해서 행성 운동법칙을 케플러 법칙으로 정리했다. 그 어깨를 딛고 선 아이작 뉴턴은 고전물리학을 완성했다. 관찰은 데이터를 남겼고, 데이터는 과학을 발전시켰다.
21세기 우리는 브라헤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매일 만들고 있다. 예전에는 별자리나 완두콩 꽃 색깔 같은 데이터였다면 이제는 개인의 걷고, 말하고, 검색하는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된다. 심지어 잠자고 있을 때도 데이터를 만든다. 디지털 시대에 만들어지는 수많은 데이터는 과학기술을 혁명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기업이 가장 탐내는 것은 금융정보, 의료정보, 구매정보 등 개인정보다. 이런 데이터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엄청난 사회적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이미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정보기술(IT) 거인 기업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공짜 서비스를 주고 데이터를 가져갔다. 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됐다. 이 분야는 특히 미국기업이 가장 앞서 있다. 네트워크 효과가 강해 승자독식이 심하게 일어나는 디지털 산업은 특성상 데이터를 독점하는 문제가 크다. 그래서 유럽도 아시아도 데이터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데이터 전쟁은 서버를 어디에 두는지 등 이제 디지털 영토전쟁으로 바뀌고 있다.
그 데이터를 '보호해야 한다' '활용해야 한다'로 벌어지는 논쟁은 이미 다가온 데이터 시대를 어떻게 적응할지에 대한 고민의 일부다. 보호하든 활용하든 그보다 더 먼저 할 것은 데이터에 대한 권리, 주권의식 확보다. 우리는 데이터를 만들면서도 데이터를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정보 이용 허락'에 체크한다. 거절하면 정보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선택 권한을 가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절차로 책임만 떠넘겨 받은 꼴이다.
내가 허락한 개인정보 범위, 허락한 서비스, 허락했지만 시간이 지난 정보들을 내가 결정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내 데이터를 허락받고 가져간 이들이 그다음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하자는 것이다. 수익이 있었다면 그 혜택을 돌려받게 하자는 것이다. 데이터 보호에만 머무르면 디지털 사회로 나아갈 수 없다.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기껏해야 보험 권유, 대출 알선 등이 데이터 활용의 전부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개인정보를 수집해서 정치적 선전에 악용해 문제가 된 페이스북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사건'처럼 데이터에 대한 오남용은 공동체 전체의 신뢰를 흔들 수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경기도가 '데이터 주권 국제포럼'을 연다. 오는 8일 웹의 아버지라 불리는 팀 버너스리 경이 주제발표를 하고 유럽연합(EU) 등 주요 단체 및 해외 주요 도시들이 시민 데이터를 어떻게 대해 왔는지 등 고민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이 자리에서 바로 결론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이런 주제로 함께 의논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제 디지털 시대를 피할 수 없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경험하는 세대가 점점 사회 중심이 되고 있다. 데이터 주권은 이제 디지털 시민의 기본 권리다.
임문영 경기도 미래성장정책관 seerlim@gg.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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