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온고지신]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시대, 출연연의 역할

이지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정책연구본부장
<이지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정책연구본부장>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격화되는 첨단기술 글로벌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기술패권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데 절대적 결정요인으로 부상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세대 기술에 대한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연구개발(R&D)부터 상용화에 이르는 기술생태계에서 상대국을 배제하며 글로벌 공급망을 포함한 생산체계의 역내화로 기술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패권 경쟁에서 첨단기술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영향력과 글로벌 기술분업을 주도하는 중국의 막대한 경쟁력을 감안해 보면 현 상황은 미래를 예단하기 매우 어렵다. 또 매우 복잡한 정세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역으로 우리나라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R&D와 생산역량에서 혁신을 선도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한다면 기술패권 경쟁은 우리나라를 새롭게 도약시킬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면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첨단기술 혁신을 선도하고 글로벌 기술생태계를 주도하며 글로벌 공급망 체제 개편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출연연구원(출연연)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막대한 위험이나 피해가 예상되는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기술자립을 위한 제2의 소재·부품·장비 관련 투자 확대를 출연연이 선도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정책, 미래 기술개발 전략, 상대국에 대한 규제정책 등을 단계별 시나리오로 검토하고 국내 기술과 산업에 대한 일종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선별된 고위험 분야를 중심으로 원천기술 또는 대체기술 개발을 위한 선제적 기획과 R&D를 출연연이 확대해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은 결국 독자적 기술표준 경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타의에 의한 기술표준 선택은 미국과 중국이 모두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 관계에 있는 우리나라에 심각한 위기상황을 만들 개연성이 높다. 이에 출연연이 앞장서 활발한 국내·외 표준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그동안 4G, 5G를 비롯한 이동통신과 메모리 반도체 등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기술표준을 주도한 경험을 감안하면 자율주행차를 비롯해, 인공지능(AI), 빅데이터(Bigdata), 클라우드(Cloud),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분야에서 그 역량과 가능성이 충분할 것이다.

또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은 결국 고급인재 경쟁일 것이고 이에 출연연이 대학, 기업과 협력하여 창의적 인재와 맞춤형 인재를 모두 양성하는 인재 생태계의 요람이 돼야 한다. 첨단기술 분야의 고급인재 양성을 위해 미국은 천문학적 예산을 투자하고 중국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인재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이에 출연연이 대학생이나 석·박사 과정, 포닥, 재직자에게 첨단기술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첨단 중소기업, 벤처창업에 적합한 인재확보로 선순환된다면 글로벌 패권경쟁에서 국내 기술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끝으로, 글로벌 기술생태계와 공급망을 선도하기 위해 출연연의 글로벌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의 자국화 내지 역내화는 단지 생산체계에 그치지 않고 원천이나 상용화 기술개발 분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자국이나 역내에서 공동으로 창출하거나 개발된 기술로 우선적 블록화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출연연은 미국이나 중국 등의 유수 대학이나 연구기관, 기업을 중심으로 형식적 교류관계를 넘어 개방적 글로벌 혁신형 기술개발, 공동 기술사업화를 위해 그 역할의 확대가 적극 요청된다.

이지형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기술정책연구본부장 leejeehy@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