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25>박 대통령 새해 시정연설 “올해 과기 행정부서 설치”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1월 17일 국회에서 새해 연두교시를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박정희 대통령이 1967년 1월 17일 국회에서 새해 연두교시를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제공>

“과학기술 행정을 전담할 부서를 올해 설치,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을 도모하겠습니다.”

1967년 1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 제59회 임시국회 새해 시정연설(당시는 연두교시)에서 이같이 밝혔다. 과학기술계의 오랜 숙원인 과학기술 부서 설치가 공식화하는 순간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배영호 국회사무총장 안내로 본회의장에 입장해 40여분 동안 새해 국정 구상을 밝혔다. 본 회의장에는 정일권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이 배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올해를 위대한 '전진의 해'로 삼아 후손들에게 우리가 '조국 근대화의 신앙'을 가지고 일했다는 기록을 남기겠다”면서 “경제계획 5개년 투자순위에 따라 전자공업과 기계, 자동차 공업 등 기간산업 육성에 힘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과학기술계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기술 행정 전담부서 설치 약속에 두 손을 들어 환영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즉각 설치 업무에 착수했다. 시정연설 이튿날인 18일 김원태 무임소 장관을 청와대로 불러 과학기술부 신설 문제를 종합해 최종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김원태 전 장관의 생전 회고.

“박 대통령께서 과학기술 행정기구 설치(안)을 '무임소 장관이 중립적인 위치에서 만들어 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신설 부서 설치안 마련이라는 숙제를 떠안은 무임소장관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과연 어떤 형태의 전담 부처안을 만들 것인가. 과학기술계는 무임소장관실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과학기술 전담 부처 설치를 정부에 건의한 과학자는 이태규 박사다. 한국과학계의 거목인 이태규 박사는 미국 군정기인 1946년 2월 국내 처음으로 과학기술부 설치를 제안했다. 이 제안은 미래를 내다본 탁견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인식 부족으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5·16 이후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행정 전담기구 신설 건의서를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제출했고, 최고회의는 정부에 과학기술 행정 전담기구 설립에 관해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1962년 6월 경제기획원에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첫 기구로 기술관리국을 설치했다.

1964년 9월 경제와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현안을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대통령 직속자문기구 경제과학심의회의(이하 경과심)도 과학기술 행정기구를 신설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다. 경과심은 과학기술의 종합적인 정책 수립과 행정 체제 확립, 연구예산의 효율적인 집행 등을 위해 과학기술 행정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은 1966년 7월 마련한 제2차 과학기술진흥 5개년계획 기간(1967~1971년)에 국무위원을 장(長)으로 하는 부처 출범을 고려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경제기획원은 과학기술정책을 총괄하는 행정 기구로 과학기술원을 설립하고 국무위원을 원장으로 하며 원장은 부총리급으로 한다는 안을 준비했다.

1966년 9월 24일 오후 3시 100여명의 학회·협회·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창립총회에서 과학기술계 대표들은 국무위원을 행정 책임자로 하는 과학기술 전담 부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정부에 제출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라는 믿음으로 과학기술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에 과학기술 행정기구 설치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한 며칠 후인 그해 1월 하순 어느 날 김원태 무임소장관실에서 전상근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장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과학기술 행정기구 설치 문제로 협의할 일이 있으니 곧 정무장관실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상근 국장(현 삼전복지재단 이사장)은 김태동 경제기획원 차관에게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한 뒤 곧바로 김원태 무임소장관실로 갔다.

“전 국장, 어서 오시오. 알다시피 중립적인 위치에서 설치안을 만들어 보라는 대통령 지시를 받았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과학기술 행정을 관장하는 기술관리국 의견부터 듣고자 합니다.”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물론입니다. 가능한 이른 시일 안에 제시해 주면 좋겠습니다.”

전상근 국장은 사무실로 돌아와 문영철 기술관리과장, 송재휘 기술진흥과장, 이응선 기술조사과장이 참석한 과장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에서 새로 설치하는 행정기구는 과학기술 행정에 관해 관계 부처를 종합 조정하고 개발 계획을 수립하며,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심사 조정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했다.

전상근 국장이 회고록(한국의 과학기술 개발)에서 밝힌 대화를 재구성해 본다.

“이 기구 명칭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일단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는 꼭 들어가야 합니다. 다음은 부(部)나 원(院), 처(處)로 하느냐가 문제로 남겠군요.”

“부는 고유한 집행 업무가 없어 적당하지 않고 그렇다면 원이나 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원으로 하는 게 타당합니다. 국가 차원에서 과학기술을 진흥하려면 부총리 수준의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경제기획원 장관과 격이 같은 부총리급 과학기술원 장관으로 해야 합니다.”

부총리 수준의 과학기술원 장관이란 점에 모두 찬성했다. 수차례 논의를 거쳐 △과학기술 진흥을 위한 종합적인 기본 계획과 정책 수립, 종합 조정권 △정부 각 부처의 과학기술 관계, 연구시설 조성과 예산에 대한 편성지침 작성 및 조정권 △과학기술 인력자원에 관한 계획과 정책 수립 및 조정권 △외국과 과학기술 협력과 기술 도입 총괄 △원자력 개발과 활용 등 다섯 가지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정리했다.

기술관리국은 각 부처와 과학기술 업무를 종합적으로 조정하려면 경제기획원과 같이 차관보 제도를 두고 과학기술에 관한 연구 활동을 조정해 국가 전체의 개발 계획과 일치하는 역할을 하는 연구조정관을 둔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술관리국은 이 같은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원(가칭) 기구(안)을 마련했다. 당시 기구안은 장관과 차관, 운영차관보와 연구차관보를 두고 기획관리실 및 연구조정관실을 둔다는 안이었다. 운영차관보 아래 진흥국과 협력국, 연구차관보 아래 연구조정국과 원자력국을 각각 두기로 했다.

기술관리국은 또 과학기술원은 그동안 원자력원이 관장하던 원자력연구소·방사선의학연구소·방사선농학연구소 등 3개 연구소를 관장하고, 한국과학기술정보센터와 당시 한창 건설되고 있던 한국과학기술연구소를 간접 지원한다고 정했다.

전상근 국장은 경제기획원이 마련한 과학기술원 설치(안)을 김원태 무임소 장관에게 제출했다. 이 안을 받아 검토하던 김원태 장관이 어느 날 전상근 국장을 다시 집무실로 불렀다.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전 국장, 알다시피 무임소장관실은 이 설치안을 만들 인력이 없습니다. 어렵겠지만 기술관리국에서 실질적인 작업을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상근 국장은 무임소장관실과 기술관리국 간 긴밀한 협력을 담당할 창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 역할을 문영철 기술관리과장에게 맡겼다. 문영철 기술관리과장은 수시로 무임소장관실을 오가며 설치안 작업을 진행했다.

1967년 당시만 해도 정부의 과학기술 관련 기구는 모래알처럼 각 부처로 흩어져 있었다.

헌법상 대통령직속기구로 과학기술심의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위원은 장관급이었다. 당시 과학 분야를 담당하던 위원은 최규남 박사, 이종진 박사, 김기형 박사 등이었다.

정부의 과학기술 전담기구인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은 과학기술 개발과 인력개발 계획 등을 수립하고 과학기술 국제 협력 업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건립 업무 등을 담당했다.

부처마다 산하에 업무와 관련한 시험소와 연구소를 두고 있었다. 대학 연구소도 있었지만 명맥만 유지할 뿐 유명무실했다.

당시 부처 산하 연구소를 보면 내무부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재무부에는 중앙전매기술연구소, 문교부에는 국립과학관과 국립박물관, 농림부에는 국립수산진흥원, 상공부에는 국립공업연구소와 국립지질연구소, 건설부에는 국립건설연구소, 체신부에는 통신연구소 등이 있었다. 원자력원은 산하에 원자력연구소, 방사선의학연구소, 방사선농학연구소 등을 두고 있었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 관련 연구기관은 통합할 필요가 있었다.

김원태 무임소 장관은 관련 부서와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이 제출한 과학기술원(안)을 받아 과학기술 행정부처 신설의 기본 원칙을 마련했다.

기본 원칙은 △신설 과학기술 행정기구는 경제기획원 기술관리국 주축으로 조직한다 △명칭은 과학기술원으로 하고 경제기획원과 같이 국무총리 직속으로 하며, 서열은 경제기획원 장관 다음으로 한다 △과학기술원은 각 부처로 분산된 과학기술 관련 연구기관을 흡수하며, 그러나 해당 부처의 고유한 업무와 직결한 연구소나 시험소는 통합하지 않는다 △원자력원은 청(廳)으로 격하해 과학기술원 산하에 둔다 등이었다.

그해 1월 30일. 정부는 이날 오전 중앙청에서 정일권 국무총리 주재로 김원태 무임소 장관과 이석제 총무처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김원태 무임소 장관이 마련한 신설(안)을 2월 초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키로 했다.

과학기술계가 오랜 세월 그토록 갈망해 온 과학기술 행정부서 설치는 이제 시간문제였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