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두고 전기차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반도체 수급난이 좀처럼 해소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보조금 정책까지 바뀌면서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고민이 깊어졌다. 당장 자동차 업체는 전기차 출고 지연 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올해 출고를 시작한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제네시스 GV60 3개 차종은 출고 대기 물량이 7만여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 등장으로 상품성이 높아지면서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였다. 한국지엠과 쌍용차 등도 새해 볼트 EUV, 코란도 이모션 등 신형 전기차 투입을 앞뒀다.
올해 현대차 전기차 판매 예상치는 14만여대이며, 새해 목표는 57% 늘어난 22만대다. 이를 달성하려면 최대 생산에 나서야 하지만 반도체 등 부품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 올해 4분기부터 해소가 예상되던 반도체 수급 정상화가 더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반 내연기관 차량에 300여개 반도체가 들어가지만 전자부품 비중이 높은 전기차는 두 배 이상 많은 600~900개가 필요하다.
새해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도 공급자와 소비자의 고민을 가중시킨다. 보조금 지급 기준은 5500만원으로, 올해 5990만원에 출시해서 인기를 끈 제네시스 GV60과 메르세데스-벤츠 EQA 등은 보조금 혜택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최근 환경부는 새해 국고 보조금을 올해 8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줄이고, 100% 지급 상한선을 올해보다 500만원 낮춰 5500만원으로 설정한 전기차 보조금 개정 초안을 발표했다. 제조사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고 더 많은 구매자에게 혜택을 확대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보조금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사는 보조금 기준을 낮추더라도 당장 가격 인하를 단행하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원자재 부족과 배터리 가격 인상 등 생산 단가가 갈수록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격을 더 내리는 건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27일 “정부가 제조사에 보조금 정책을 설명하면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가격 인하는 차급 가격 간섭, 브랜드 이미지, 기존 구매자와의 형평성, 중고차 시세 영향 등 여러 문제가 나타날 수 있어 예민한 문제”라고 말했다.
소비자도 기존 전기차 인수 대기가 길어지고 보조금까지 줄어들자 난감한 상황이다. 기존 계약을 유지해야 할지, 신차가 나오면 가격과 상품성을 다시 따져서 교체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를 겨냥해 새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를 비롯해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 등 수입차 업체들이 최신 전기차를 투입하며 대대적 시장 공략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여름 GV60을 주문한 이성희씨는 “보조금 상한선이 5500만원으로 결정되면 보조금이 절반으로 주는데 굳이 기존 계약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면서 “다른 전기차가 합리적 가격에 나오면 계약 변경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