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홈쇼핑 '아세안드림'

박준호 플랫폼유통부 기자
<박준호 플랫폼유통부 기자>

몇 년 전만 해도 동남아시아는 한국 TV홈쇼핑 기업에 '기회의 땅'으로 여겨졌다. 가파른 경제 성장과 한류 열풍을 발판 삼아 무너진 차이나드림을 동남아에서 다시 세우겠다는 희망이 넘쳤다. 정부의 신남방정책도 동남아 진출에 불을 지폈다.

홈쇼핑도 신남방 개척의 선봉 역할을 자처했다. 2019년 출범한 신남방비즈니스연합회에 국내 유통단체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 정부 역시 홈쇼핑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교두보가 되길 바라며 물밑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홈쇼핑의 아세안드림은 실패했다. CJ는 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 현지 법인을 전부 청산했고, 롯데와 현대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눈덩이 적자가 쌓인 인도네시아와 태국에서도 조만간 발을 뺄 공산이 크다. 장밋빛 낙관이 무색하게 '한국형 홈쇼핑'은 동남아 신흥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했다.

얼마 전 만난 홈쇼핑협회 관계자에게 실패의 요인을 묻자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마음만 앞선 채 현지 문화와 시스템 체제를 면밀하게 연구하지 못한 채 성급하게 뛰어든 것이 패착이었다는 설명이다. 원인을 찾는다면 수십 가지가 되겠지만 하나를 꼽는다면 현지 소비 트렌드를 제때 읽지 못한 탓이 크다.

한국과 달리 동남아는 방송과 인터넷을 매개로 한 온라인 쇼핑을 건너뛰고 곧바로 모바일 쇼핑 중심으로 재편됐다. TV를 기반으로 한 홈쇼핑의 구매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토의 종과 횡이 길고 물류가 낙후된 동남아에서 높은 인구 밀도를 기반으로 촘촘한 배송망을 갖춘 한국 홈쇼핑의 장점도 통하지 않았다.

동남아 국가 대부분이 상품 수령 후 대금을 지급하는 COD(Cash on Delivery) 결제 방식이 자리 잡은 점도 부담의 요인이 됐다. 합작법인(JV) 지분의 과반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현지의 높은 규제 장벽도 발목을 잡았다. 소비 환경과 문화가 우리와 전혀 다른 동남아 시장을 너무 얕봤다는 자성도 나온다. 한류만 믿고 뛰어든 홈쇼핑 업계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같은 상황이 다른 업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홈쇼핑에 이어 대형마트, 편의점, 면세점 등이 동남아 시장 개척에 뛰어든 상태다. 모두 한국 상품의 높은 선호도를 무기로 삼았다. 다행히 편의점 GS25와 CU는 각각 베트남, 말레이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직접 진출 대신 마스터프랜차이즈를 활용한 간접 진출 전략으로 위험 부담은 최소화하고 진입장벽도 낮출 수 있었다. 현지 규제에 막혀 성장이 지지부진했던 홈쇼핑에서 얻은 교훈이다. 신남방정책을 통해 쌓은 경험과 연구가 헛되지 않으려면 홈쇼핑의 동남아 실패 원인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 진출을 꾀하는 국내 기업에 살아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